링컨 대통령과 해리엇 비처 스토 여사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1861~1865)에 승리한 후 백악관으로 해리엇 비처 스토 여사(1811~1896)를 초청했다. 그녀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남부에서 금서로 지정됐지만 30만 부 넘게 팔릴 정도로 노예제 폐지사안과 관련해 엄청난 폭풍을 불러왔다. 링컨은 이 자리에서 유명한 인사말을 했다.
“그러니까 바로 당신이 이 위대한 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 책을 쓴 여자군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작품성이 아닌 영향력으로 명작이 됐다. 이 책이 있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한류 또는 K컬처라는 현상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통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라는 공론장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우리 것을 기반으로 하면서 세계 문화를 소화하는 역량과 재능 있는 아티스트 개개인의 노력과 이들을 뒷받침한 기업과 정부의 지원까지 한류 현상에 이바지한 요인은 어느 하나 빠트릴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이 세계 무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속도와 규모라는 날개를 달아준 것은 거대 플랫폼이다.
오늘날 공론장은 차고 넘친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다. 문제는 근대화 시기 동아시아에는 신문이 없었다는 점이다. 1880년대까지 조선에는 민간 출판문화조차 없었다. 황당하다. 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든 조선이 일본에서 활자를 수입해 사용했다.
역사는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든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희생과 발전에 의해서 열매를 맺는다. 종교개혁 역시 루터와 칼뱅이라는 탁월한 혁신가들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세상을 뒤집어놓은 게 아니다. 150년 전부터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변화를 원하는 세력들이 점차 증가하고 인쇄술과 같은 새로운 수단이 발명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성경』이 진리다”라는 똑같은 주장을 하고도 100년 전 얀 후스는 화형을 당했고 루터는 성공했다. 이는 변화가 개인의 역량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여건이 얼마나 성숙됐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방증한다.
[대전환기29]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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