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정수정 기자]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쉬숑의 숨겨졌던 저작이 300여 년의 세월을 넘어 국내에 소개됐다. 《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은 제목부터 강렬하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정면에서 반박하며,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여성의 지성과 도덕성, 인간적 가치를 논증한 이 책은 시대를 앞선 ‘최초의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로 주목받고 있다.
쉬숑은 여성에게 ‘나약함, 가벼움, 변덕스러움’이라는 부정적 속성이 전가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특히 여성 혐오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는 종교적·철학적 권위에 맞서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베르길리우스 등 고대 철학자들을 끌어와 반박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논리적 수완과 지적 깊이가 돋보인다. “이 책은 이성과 정의감과 형평성의 관점에서 집필됐다”는 쉬숑의 말처럼,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논거로 여성의 인간성을 옹호한다.
책의 구조는 명확하다. 각 장은 여성에게 낙인처럼 덧씌워진 세 가지 속성에 대한 반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반대 개념인 ‘강인함’, ‘의지’, ‘끈기’의 원천을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쉬숑은 여성도 인간 본성의 긍정적·부정적 특성을 모두 지닌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특정 성별에만 결함이나 미덕을 귀속시키는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한다.
쉬숑의 저작은 당시 남성 중심 지성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그와 함께 저자 역시 오랜 시간 역사에서 지워졌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재조명되었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여성 문제에 관해 여성이 쓴 가장 설득력 있는 최초의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언어폭력은 하나의 거대한 습속이 되어 있다”는 쉬숑의 문장은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여성의 글쓰기가 저주로 여겨지고, 남성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금기였던 시대에 이 글은 단순한 반박을 넘어, 여성이 ‘좋은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가능성을 제시한 선언이었다.
《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은 그 자체로 여성 사상의 계보를 잇는 한 기점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고전이다. ‘왜 여성은 인간 본질에 있어 동등한 지분을 소유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는가’라는 물음 앞에, 이 책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확한 대답을 제시한다.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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