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가운데, 수원 도심에서 보기 힘든 흰색 난초가 피어난다. 이름도 생소한 ‘해오라비난초’. 한때 경기도와 강원도 습지에서 은밀히 살아가던 이 식물이 8월 초 수원 일월수목원과 영흥 수목원에서 동시에 개화한다. 이 꽃의 개화 기간은 약 2주간이다. 관람은 무료다.
수원시는 2023년 5월 수목원 개원에 맞춰 국립수목원과 협력해 해오라비난초를 심었다. 번식에 성공한 일부 개체는 영흥 수목원 두충나무 숲으로 옮겨졌고, 올해 처음으로 두 곳에서 동시에 꽃을 피운다. 도시 속에서 멸종위기식물이 개화하는 건 매우 드문 사례다.
해오라기 닮은 흰 난초… 이름도, 생김새도 특별한 꽃
해오라비난초는 난초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의 생김새가 마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해오라기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꽃말도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로, 그만큼 희귀하고 신비롭다.
꽃은 보통 7~8월, 높이 15~40cm 되는 줄기 끝에 1~2송이 핀다. 꽃 지름은 약 3cm로 작지만, 하얀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 덕분에 관상 가치가 크다. 꽃잎은 총 세 갈래로 나뉘며, 중앙은 가늘고 곧게 뻗고, 양쪽은 마치 깃털처럼 갈라진다.
이 중 입술 모양 꽃잎은 독특한 형태와 질감을 가진다. 이 때문에 원예가들 사이에선 군식이나 습지 정원용으로도 인기다. 단, 생육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일반 가정에선 재배가 어렵다.
습지에서만 사는 식물… 도심 생육, 관리가 관건
해오라비난초는 원래 한반도 중부와 남부의 습지에서 자생하던 식물이다. 이 식물은 햇볕이 잘 들고 찬물이 흐르는 습지 환경에서만 잘 자란다. 자연광을 50% 정도 차광한 반그늘에서 성장 속도가 좋고, 25도 이상 고온 환경에서는 생육이 급격히 떨어진다.
수원수목원은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끼를 두껍게 깐 인공습지를 조성하고, 분무 시스템을 정비했다. 지역 자원봉사자 그룹 ‘수수랑’이 함께 정기적으로 식재지를 정비하고, 제초와 병충해 방제를 하는 방식으로 관리 중이다.
자연 번식률 낮아… 보전을 위한 증식 필수
해오라비난초는 씨앗 번식(실생)과 뿌리에서 난 움을 뿌리와 같이 갈라 나누어 따로 옮겨 심는 알줄기 분주를 통해 번식할 수 있다. 특히 씨앗으로 번식 가능한 몇 안 되는 난초로, 파종 후 7일 만에 발아할 수 있다. 9월 하순 열매가 갈색으로 익으면 종자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자연 상태에서의 발아 성공률은 매우 낮다. 발아에 필수적인 곰팡이류(공생균)가 특정 환경에만 존재하고, 식생지가 훼손되면 번식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인공 재배에서도 고온, 고습, 일조량 등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발아에 실패하기 쉽다.
이 때문에 수목원이나 전문 기관은 실생과 분주를 병행하고 있다. 분주 번식은 겨울철 알줄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멸종위기 Ⅱ급… 관상용 채취로 자생지 붕괴 심각
해오라비난초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 식물이다. 동시에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식물이자, 국가생물다양성센터가 관리하는 국가 적색목록 상 ‘위기(EN)’ 단계에 놓여 있다.
현재 경기도 수원시 칠보산, 강원도 양구·정선·홍천, 경북 상주, 경남 산청 등의 습지에 개체가 극소수 남아 있다. 대부분 고립된 습지나 계곡 주변에 극소수로 분포해 관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아 무분별한 채취가 이어졌고, 이는 곧 자생지 파괴로 이어졌다. 이식조차 어려워 현지 보전과 유전자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수원시는 멸종위기식물 보존 사업의 하나로 수목원 내 자연습지 조성과 더불어 자생지 복원을 병행 중이다. 해오라비난초는 일반 시민이 직접 관람하며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는 ‘도심 속 생태 교과서’로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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