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아남아 미요미요 울었다"...한국 대표 작가들, ‘비인간 동물’과 소설로 눈 맞추다 [책 속 명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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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아남아 미요미요 울었다"...한국 대표 작가들, ‘비인간 동물’과 소설로 눈 맞추다 [책 속 명문장]

독서신문 2025-07-31 17:43:00 신고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설기를 잃고 세미는 한동안 경의선숲길에 앉아 있곤 했다. (...) 밤이면 헤어밴드를 하고 땀에 젖어 뛰는 러너들과 부모에게 이끌려 하는 수 없이 운동을 나온 사춘기 아이들 그리고 개를 데리고 온 반려인들로 가득 찼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들이 세미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고 세미는 그렇게 바라만 봐도 설기 그리고 설기와 같은 종인 그들, 개들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김금희, 「당신 개 좀 안아 봐도 될까요」 중에서

거친 돌멩이와 마른 풀을 헤치고 강기슭에 이르자, 녀석이 아내의 바위에 앉아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거리는 핸드폰 불빛에 녀석이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도 강 씨를 알아보고 야옹, 하고 울었다. 고양이는 항상 우는 존재인가. 사는 게 고달파도 울고, 행복해도 울고, 기뻐도 울고, 불행해도 우나.
- 장은진, 「파수꾼」 중에서

송아지 녀석은 제 어미 곧은창자 뭉치 밑에 엎어져 전신을 떨어 대며 ‘꾸르릉 꾸릉’ 하고 있었다. 박치기가 녀석을 살린 모양이다. 느닷없는 충격에 녀석은 저도 모르게 솟구쳤으리라. 잘했다, 참 잘했다. 그려, 너는 살려고 태어난 것이여.
- 김종광, 「산후조리」중에서

죽음이 너무 많았다. 죽음이 너무 많아서 죽음인가 보다 했다. 죽음이 너무 많고, 죽음이 여전히 너무 많아서 여전히 죽음인가 보다 했다. 죽어 가다가 죽음. 죽음이 너무 많아서 나도 죽나 보다 했다. 나도 죽어 가다가 언젠가 죽음. 그러나 닭들은 너무 빨리 죽어 갔다. 알을 낳지 못해 죽고, 알을 많이 낳아서 죽고, 병들어서 죽고, 병들 수 있기 때문에 죽고, 스트레스 받아서 죽고, 끼여 죽고, 눌려 죽고, 깔려 죽고, 먹히기 위해 죽고, (...)
- 서이제, 「두개골의 안과 밖」 중에서

저도 처음 낙타가 되었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 낙타는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물 냄새도 맡을 수 있는 동물이잖아요. 먼 곳에 있는 물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막막해 보이는 사막을 계속해서 걸어 나갈 수 있는 거고요. 그런데 몇 킬로미터 내에도 물이 없을 때, 물의 그림자조차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을 때 낙타가 무엇을 하는지 아세요? 유미 씨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똑같이 걷는 겁니다. 한 걸음씩.
- 임선우, 「초록 고래가 있는 방」 중에서

묘생 십오 년, 인간으로부터 받은 이름은 몸, 나는 인간의 우방이 아니다.
- 황정은, 「묘씨생」 중에서

 평생을 먹을 것과 거주를 두고 인간과 경쟁했다.
 경쟁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쫓겨 다니기만을 반복했으므로 평생을 먹을 거소가 거주를 두고 인간을 원한했다,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까. 내게도 삼색 털이 아름다운 비율로 섞인 어미와 형제들이 있었다. 모두 죽었다. 미심쩍은 고기를 나누어 먹고 피를 토하다가 딱딱해졌다. 내가 그들처럼 되지 않은 것은 여덟 마리 형제들 가운데 가장 쇠약해 어미가 물어다 준 고기를 입에 대보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겨울이었다. 홀로 살아남아 미요미요 울었다.
- 황정은, 「묘씨생」 중에서

야생 동물을 길에서 만난 게 처음이었습니다. 그곳은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의 영역이었으니까요. 길에 인간만 다니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게 다가왔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봤다면 정말 이상한 게 뭔지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한 행성을 한 종이 절반 가까이 정복하고 있었다는 게 소름 끼칩니다.
- 천선란, 「바키타」 중에서

■ 눈 맞추는 소설
김금희,장은진,김종광,서이제,임선우,황정은,천선란 지음 | 김선산,김형태,성보혜,이혜연 엮음 | 창비교육 펴냄 | 264쪽 | 17,000원

[정리=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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