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류현진(38·한화 이글스)과 김광현(37·SSG 랜더스)이 마침내 정규시즌 마운드에서 마주했다. 2006년과 2007년 각각 프로 무대에 데뷔한 두 투수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야구의 얼굴로 군림했지만, 정작 KBO리그 공식 경기에서 선발로 맞붙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오랜 기다림의 끝에 26일 대전한화생명볼파크에서 마침내 두 투수가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이번 경기를 향한 관심은 단순한 성적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반응만 봐도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온라인 예매분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일부 현장 판매분을 얻기 위한 팬들의 긴 줄은 경기 시작 수 시간 전부터 이어졌다.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돗자리, 손선풍기, 양산으로 중무장한 채 티켓을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은 두 선수의 이름값이 지닌 상징성을 보여줬다. 이 경기는 한화의 시즌 41번째 매진이자 홈·원정 포함 30경기 연속 매진이라는 신기록도 함께 만들었다.
경기 전 분위기는 축제와도 같았다. 김경문(67) 한화 감독과 이숭용(54) SSG 감독 모두 이번 맞대결을 특별하게 여겼다. 김경문 감독은 “(류)현진이와 (김)광현이가 그 나이에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다는 건 자기관리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오늘은 현진이를 위해 선수들이 더 분발해 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경문 감독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당시 두 선수와 함께했던 인연을 떠올리며 “그때 금메달을 딴 건 두 친구 덕분이고, 감독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말했다. 이숭용 감독 역시 “진작에 맞붙어야 했던 경기였다”고 웃으며 “광현이가 긴 이닝을 책임져주길 바란다. 수비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승부처를 짚었다.
다만 이날 승부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싱겁게 끝났다. 류현진은 1회에만 32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 1볼넷 5실점(5자책)으로 무너졌고, 결국 1이닝만 소화한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반면 김광현은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9-3 대승을 이끌었다. 기대했던 투수전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팬들에겐 여전히 기억에 남을 장면이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광현은 “완투에 가까운 투수전을 기대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며 “모두가 의식했던 경기였기에 평소보다 더 집중하려 노력했다. 몸을 푸는 동안 이어폰을 착용하며 혼자만의 시간에 몰두한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현진이 형은 항상 위에 있는 존재다. 오늘 컨디션이 좋지 못해 아쉬웠다. 다음엔 서로 최고의 컨디션으로 맞붙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번 맞대결을 가장 복잡한 감정으로 지켜본 이가 있다. 바로 한화의 베테랑 포수 이재원(37)이다. 김광현과는 SK 시절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고, 류현진과는 지난해부터 한화에서 함께하고 있다. 그는 두 선수와 모두 인연이 깊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고교 시절부터 류현진과 우정을 쌓은 그는 “두 선수가 전성기에 맞붙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늦게라도 이 장면이 실현돼 야구인으로서 흐뭇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재원은 2010년 5월 23일을 떠올렸다. 당시 한화와 SK의 선발로 류현진과 김광현이 예고되며 시선이 쏠렸지만,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이재원은 “그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이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날 같다”고 했다. 아쉽게도 허리 통증으로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그는 “광현이 공을 받으며 현진이 공을 치는 장면을 상상했던 적도 있었다”고 웃었다.
통산 1승 1무 1패로 호각을 이뤘던 과거 선동열(62)과 고(故) 최동원의 대결만큼 치열한 승부는 펼쳐지지 못했지만, 이번 ‘류김대전’의 의미는 기록보다 깊었다. 18년을 돌아 결국 한 무대에서 만난 두 에이스의 만남은 팬과 선수 모두에게 감동의 장면이었다. 전성기를 함께했던 1세대 팬들에게는 향수였고, 야구 흥행을 이끄는 MZ세대에게는 두 이름의 무게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점수로는 싱겁게 끝났지만 기억으로는 오래 남을 명경기였다. 투수전은 없었지만 팬들과 감독, 동료 선수들 모두가 느낀 ‘야구의 낭만’이 존재한 까닭이다. 돌고 돌아 마침내 성사된 맞대결만으로도 이날은 한국 야구사에 남을 귀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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