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도시의 브랜드는 더 이상 로고나 슬로건 같은 시각적 상징에 갇히지 않는다. 진정한 도시 브랜딩은 '살아있는 경험'과 '공동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다. 뉴욕 브루클린의 '덤보드롭'(DUMBO Drop) 축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지대였던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는 낡은 창고와 공장 지대에서 창의적 실험장으로 변모했다. 이 변화는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예술가와 디자이너,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가 스스로 끌어낸 결과였다. '덤보드롭'은 자생적 변화의 상징이며, 도시 브랜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브루클린 덤보 지역은 값싼 임대료와 넓은 공간, 그리고 탁월한 채광 덕분에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모여들며 예술 창작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공장과 창고는 스튜디오와 갤러리, 공동 작업장으로 바뀌었고, 골목 곳곳에 설치된 공공예술은 낡은 도시 공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중심의 창조지대를 만들었고, 덤보는 뉴욕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덤보드롭'은 이런 변화의 맥락에서 탄생했다. 매년 5월 말, 브루클린의 워싱턴 스트리트 하늘에서 수천 개의 작은 코끼리 인형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관이 펼쳐진다. 이 퍼포먼스는 지역 이벤트를 넘어, 도시 브랜딩의 정체성과 철학을 집약한 '참여형 브랜드 경험'이다.
코끼리 인형을 구입하고 낙하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수익이 전액 지역 공립학교에 기부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 깊은 의미를 느낀다. 이 축제는 지역 상권, 예술가, 시민, 관광객이 모두 어우러져 '살아있는 브랜드'로서 도시를 재해석하는 장이 된다.
◇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브랜드'
전통적인 도시 브랜딩은 이미지와 상징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경험'이 브랜드의 중심이 된다. '덤보드롭'은 참여와 몰입을 통해 도시 브랜드를 기억 속에 각인시킨다. 매년 새롭게 디자인되는 코끼리 인형과 블록파티, 예술 체험 행사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선 체험을 제공한다. 축제를 찾은 시민과 관광객은 그 경험을 자신의 기억으로 소유하며, 그것이 도시의 정체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브랜드를 '살아있는 정체성'으로 변화시킨다. 참여자들은 도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주체로서 관여한다. 그 과정에서 도시는 감성적 기억을 축적하고, 시민과 방문객은 도시와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 '덤보드롭'은 이런 점에서 브루클린이라는 지역이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전략적 도구다.
도시 브랜딩의 핵심은 감정과 기억의 축적이다. 아무리 세련된 로고와 광고 캠페인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감정적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브루클린 덤보 지역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코끼리 낙하'라는 이벤트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함께 즐기는 공동의 추억을 만든다.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작은 코끼리는 도시가 만들어낸 상징이자 이야기이며, 그 자체로 도시의 '문화적 유산'이 된다.
브랜드는 시각적 상징을 넘어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덤보의 경우, 예술과 기술, 공동체 활동이 결합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관계망이 도시 브랜드의 본질이다. 이 관계망은 도시를 '살아있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참여자들의 감정을 연결하는 끈이 된다. 브루클린 주민이 주도한 창조적 실험이 이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관계의 깊이' 덕분이다.
◇ 한국의 도시가 배워야 할 점
우리나라 도시 역시 이제 '외형적 개발'에서 '감성적 브랜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최근 일부 도시에서 시도하는 디자인 페스티벌이나 로컬 마켓,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좋은 출발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험'과 '참여형 플랫폼'이다. 덤보처럼 시민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그 기억이 세대를 넘어 공유될 때 도시의 브랜드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도시 브랜딩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채우는 기억, 감정, 관계가 브랜드를 만든다. 덤보의 예술가와 디자이너, 상인, 그리고 주민이 함께 설계한 축제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이 만든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변화를 지탱하는 힘은 기억과 감성이다. '덤보드롭'은 지역 축제가 아니라 도시가 시민과 맺는 '감성적 유산'의 표본이다. 작은 코끼리 인형 하나가 브루클린이라는 지역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도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것이 참여와 공유, 그리고 따뜻한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도시 경쟁력은 물리적 인프라보다 '정체성과 유연성'에서 결정된다. 도시는 사람들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자, 공동체가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브루클린 덤보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도시 브랜드가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감정과 기억, 그리고 사람 중심의 이야기다.
석수선 디자인전문가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사(영상예술학 박사). ▲ (주) 카우치포테이토 대표. ▲ 연세대학교 디자인센터 아트디렉터 역임. ▲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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