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12·3 사태와 관련해 내란 및 외환 혐의로 수사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특검의 조사 요구에 반복적으로 불응하면서, 사법 절차와 전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이 충돌하고 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15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강제 인치를 지시했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실상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대면조사 없이 기소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특검 수사의 정당성과 정치적 파장이 중첩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검, 2차 인치 지시…구치소 “물리력 행사 어려워”
특검은 전날 서울구치소에 공문을 보내 “15일 오후 2시까지 윤 전 대통령을 조사실로 인치하라”고 지시했다. 인치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구속 피의자를 조사 장소로 이송하는 절차로, 법적 근거는 명확하다.
이번 조치는 14일 시도된 1차 인치가 윤 전 대통령의 수용실 퇴거 거부로 무산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그러나 교정당국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물리력 행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특검 지시에 난색을 표했다. 사실상 ‘소극적 거부’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지영 특검보는 “특검은 법에 따라 인치를 재지시했고, 피의자 조사가 반드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면서도 법 집행의 본질은 훼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정당국이 법보다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법률에 기반한 지휘 체계가 현실에서 무력화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측 “건강상 조사 불가”…특검 “기소 불가피”
윤 전 대통령 측은 지병인 당뇨와 구치소 내 고온 환경을 들어 “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인치 지시 시각 전까지 수용실 퇴거를 거부하며 물리적 이송을 피했다.
특검은 이를 ‘건강상의 불가’보다는 ‘의도적 비협조’, 즉 정치적 버티기로 해석하고 있다. 진술 거부를 통해 수사를 방해하는 전략이라는 판단이다.
구치소 내 방문조사나 서면조사도 대안으로 논의 중이지만,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방문조사도 강제 진행이 어려운 만큼 한계가 명확하다.
특검 내부에선 조사 없이 기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특검 관계자는 “법적 요건은 충족되지만, 국민적 납득을 얻으려면 정당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술 없는 기소, 공소 유지에 제약
내란·외환 혐의는 단순 행위보다 지시, 공모, 범죄 인식 여부 등 주관적 요소의 입증이 핵심이다. 피의자의 고의성과 인식을 입증하는 데 있어 진술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진술 없이 수사와 기소를 진행할 경우, 특검은 간접 증거나 주변 진술 등을 토대로 범죄 구조를 논리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법정에서 피고인 측 반박에 취약할 수 있다.
특히 피의자가 “몰랐다”거나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반박할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면 무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검찰 출신 형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통화에서 “진술 없는 기소는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공소 유지의 확실한 수단이 되긴 어렵다”며 “정치적 사건일수록 기소 정당성과 재판 설득력이 상반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말했다.
◇인치 가능하지만…전직 대통령 예외되는 현실
형사소송법 제200조는 ‘구속 피의자의 인치’를 명시하고 있으며, 피의자의 신분에 따른 예외를 두고 있지 않다. 법적으로 특검의 인치 지시는 정당하며, 구치소는 이를 집행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구치소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이유로 물리력 행사에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수용자 관리보다 정무적 부담을 앞세우는 모습에 ‘법 앞의 평등’ 훼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형사 절차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지키려면 정치적 고려 없는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속된 피의자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절차가 적용돼야 한다’는 원칙론이다.
◇조사 없이 기소?…선례 있지만 이번은 다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대면 없이 기소하는 시나리오는 현실화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세 차례 방문조사를 거부한 뒤 대면조사 없이 기소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은 개인 비리에 국한된 반면, 윤 전 대통령은 내란 및 외환죄라는 헌정질서 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의 무게 자체가 국가 정체성과 통치 정당성에 직결된다.
더욱이 윤 전 대통령 본인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사 없이 기소’라는 수사 방식을 앞장서 도입한 인물이다. ‘당시의 원칙이 현재 자신의 사건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점은 정치적 아이러니다. 여론도 이 원칙 적용을 압박하고 있다.
◇기소는 시작일 뿐…정당성 확보 실패 시 ‘역풍’
특검은 “조사 없는 기소는 마지막 수단이며, 모든 법적 절차를 다 거친 뒤에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끝까지 설득에 나서겠이지만, 실제 가능 수단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조사 없이 기소가 이뤄질 경우, 수사의 무게중심은 ‘법적 완결성’보다는 ‘정당성 확보’로 이동할 수 있다.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여론과 정치권이 이를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사는 오히려 사법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기소는 종결이 아닌 출발점이다. 윤 전 대통령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선 법정 내 논리 구성과 설득력이 관건이다. 특검은 ‘절차적 정당성’과 ‘공소 유지의 설득력’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시험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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