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이재명 정부의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세 기관 사이의 권한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구상한 개편안은 금융위 해체와 정책·감독 기능의 분리를 골자로 하지만, 추진 동력은 멈춰 섰고, 각 기관은 저마다 입지 강화를 위한 전략적 움직임에 나선 상황이다. 금융정책의 컨트롤타워 공백이 길어질수록 조직 내부 혼선과 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기재부 중심 재편 ‘정지 상태’, 공백의 정치화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금융위의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원과의 기능 통합을 통해 감독을 일원화하는 개편을 예고해왔다. 이는 금융위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시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책과 감독의 역할을 둘러싼 기관 간 입장 차가 커지면서 조정안은 표류 중이다.
특히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유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지난 6월 5일 임기를 마친 이복현 전 금감원장의 후임 인선도 공석으로 남아 있다. 반면 다른 부처 장관 후보자들은 모두 발표된 상황이어서, 금융당국 개편만 유독 ‘정치적 장고’에 빠져 있는 셈이다.
정부가 ‘경제팀 전반의 조율을 우선시하며 금융당국 개편 시점을 뒤로 미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사이, 세 기관은 권한을 둘러싼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단순한 행정 조직 재편이 아닌 정책 결정권과 감독 권한을 둘러싼 ‘실질적 권력 구조’ 개편이라는 점에서, 갈등이 봉합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위의 방어전과 금감원의 확대 전략
가장 큰 변화의 직격탄을 맞는 곳은 금융위다. 개편안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금융위는 정책 기능을 기재부에 넘기고, 감독 기능은 금감원과 통합된다. 사실상 ‘해체 수준’의 구조 재편이다.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대외 발언과 조치에 나섰던 지난 몇 년간 ‘금융위 패싱’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만큼, 이번 개편안은 금융위 입장에선 조직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왜 지금 개편이 필요한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는 회의론과 함께, “기재부가 금융산업 정책을 종합적으로 설계할 전문성이 있는가”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가 가계부채 대책을 신속히 이행하며 존재감을 회복해가던 시점에서, 이러한 개편안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금감원은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융위 산하의 위임기관이라는 기존 위치에서 벗어나 독립성과 위상 강화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정부가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별도 기관으로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감독 권한을 강화할 수 있어도,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핵심 기능을 잃게 된다. 실제로 금감원 노조는 “금소처가 분리되면 감독 자원이 이원화돼 소비자 피해에 대한 신속 대응이 어려워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조직의 힘을 키우는 동시에 내부의 중요한 기능을 잃을 수 있는 ‘딜레마’에 놓인 셈이다.
◇한국은행의 진입 선언, ‘검사권’ 요구 전면화
이권 다툼은 한은의 깜짝 등장으로 한층 복잡해졌다. 한국은행은 최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에 금융위와 금감원이 가진 ‘주요 금융 규제 권한’과 ‘금융기관 단독 검사권’ 부여를 요청했다. 금융시장 건전성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 확보라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감독 권한 확보를 위한 전략적 진입 선언이다.
특히 한은은 비은행권까지 포괄하는 감독권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보험사,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까지 포함하는 이 구상은 기존의 거시경제 중심 기능에서 미시 감독 기능까지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한은 노조 역시 지난달 성명을 통해 “금융감독 정책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한은이 거시 건전성뿐 아니라 금융기관 미시 건전성도 총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입장은 한은이 단순히 금융시장 안정 역할을 넘어 ‘정책기관+감독기관’으로 위상을 재설정하려는 포석이다.
◇결정 미루는 정부, 정책 연속성 시험대에
이처럼 금융위는 해체 위기, 금감원은 기능 축소 리스크, 한은은 검사권 확대라는 각자의 셈법을 안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조직개편 구상은 답보 상태다. 정부는 민생 회복과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기재부 장관 임명 이후 금융당국 재편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책 공백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제4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인가 지연이다. 전 정부에서 소상공인 금융 확대를 위해 추진되던 이 정책은 현재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금융당국 조직이 안정되지 않으면서 후속 금융정책도 동력을 잃고 있다.
정부는 ‘설계된 조직개편’이냐, ‘현실 조정’이냐의 선택지를 두고 고심 중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정치적 판단만으로 시간을 끌 경우, 정책 연속성과 시장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정책 중심의 금융 거버넌스를 정비하려면 무엇보다 명확한 메시지와 일정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결단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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