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는 8월 1일부터 수입 구리에 대해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주력 산업들이 일제히 구조적 시험대에 올랐다. 산업별로 원재료인 구리의 비중과 원가 전가 구조가 달라, 같은 관세율이더라도 실적과 기업가치에 미치는 파장은 제각각이다.
14일 <뉴스로드>는 삼일PwC, KIS밸류, FnGuide, 산업은행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구리 관세 50%가 각 산업에 어떤 식으로 충격을 주는지 시뮬레이션했다. 방법론은 회계법인이 실제 적용하는 할인현금흐름(DCF) 방식이다. 관세 부담이 기업의 잉여현금흐름(FCF)을 어떻게 줄이고, 기업가치(EV)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했다.
▲조선 빅3, 구조적 완충 장치로 선방
조선 빅3(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는 모두 선박의 전장(전기 배선·제어장치) 시스템에 구리를 대량 사용하지만, 수익 구조상 원가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갖추고 있다. 조선업계는 통상 수년 단위의 장기 수주 계약을 체결하며, 일부 프로젝트에는 변동비 연동 조항(price adjustment clause) 이 포함돼 있다. 또한 기자재 발주 시점과 실물 납품 사이에 환율·원자재 가격 변동을 헷지(hedge)하는 계약 구조를 병행하기 때문에, 구리 가격 급등에도 일정 부분 손익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다.
HD현대중공업은 장기 수주계약이 다수 존재하며, 일부 선가에는 원가 연동 조정 조항이 포함돼 있어 구조적 방어력이 작동하고 있다. 이번 분석에서 FCF는 7% 감소했고, 기업가치(EV)는 본래 약 7조원에서 6조5366억원으로 하락했다.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10조원에서 9조3298억원으로 6.9%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중공업은 전체 매출의 85% 이상이 LNG선·해양플랜트 수주에 기반하고 있어 구리 사용량 자체는 많지만, 설계·조달·시공(EPC) 특성상 재료비 전가가 어렵다. 이에 따라 FCF가 약 8% 감소하고, EV도 5조3000억원에서 약 4조8760억원으로 8%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낙관 시나리오에서도 6조6000억원에서 6조1,000억원대로 약 7.5% 하락했다.
한화오션의 경우 과거 대우조선 시절의 적자구조를 벗어나 재무 체질 개선이 진행 중이지만, 자재비 비중이 여전히 높고 수익성 회복세가 더딘 편이다. 구리 관세가 반영되면 FCF는 9% 감소하며, EV는 기존 3조7000억원에서 3조3670억원으로 약 9% 하락할 것으로 나타났다. 낙관적 조건을 적용한 경우에도 4조8000억원에서 4조3950억원으로 감소해, 다른 두 조선사보다 방어력이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전선업계는 구조적으로 관세 충격이 가장 클 것으로 분석됐다. 대한전선과 LS전선 모두 구리 비중이 전체 원재료 비용의 70~80%에 달한다. 대한전선은 FCF가 10% 감소하며, 기업가치(EV)는 본래 약 1조2300억원에서 9225억원으로 25% 감소했다. 낙관적 가정에서도 EV는 1조3585억원에 그쳤다.
LS전선의 경우도 구조는 유사하다. 구리 관세 50% 반영 시, 실무 기준 FCF 감소폭은 대한전선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되며, EV도 20%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LS전선은 생산설비가 국내에 집중돼 있어, 원가 전가가 제한되는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풍산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대표되는 전기동 가공·비철소재 업계는 전선업계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세 영향을 받는 산업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전기동을 직접 가공하거나 고부가 소재를 만드는 구조지만, 원가에서 구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선보다도 높아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평가다.
풍산은 동과 아연을 기반으로 한 탄약, 동관, 전기동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구리 가격 변동에 가장 민감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풍산의 FCF는 관세 반영 시 12% 감소하며, 기준 시나리오에서 기업가치(EV)는 기존 1조3157억원에서 9714억원으로 약 26.1% 줄었다. 장기 성장률을 상향 조정한 낙관 시나리오에서도 EV는 1조4305억원에 그쳐, 원가 전가가 어려운 산업 구조임을 반영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역시 이차전지용 전해동박을 생산하는 정밀 소재 기업으로, 구리가 원재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동박 단가는 전기동 가격에 연동되는 계약 구조를 일부 채택하고 있지만, 경쟁사 대비 판가 전가력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구조적 방어력은 제한적이다. 관세 반영 시 FCF가 약 1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EV도 기준 시나리오에서 약 20% 이상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낙관적인 가정에서도 EV 반등폭이 크지 않아, 원재료 단가 상승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비철·정밀 소재 업계는 고부가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핵심 원재료에 대한 해외 의존도와 원가 전가력의 차이로 인해 구리 관세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단순 실적보다 구조적 방어력의 강화가 필요하다.
▲방산 빅4, 관세 충격 최소
반면, 방산 빅4(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는 구조적으로 가장 강한 방어력을 보였다. 정부와의 장기 계약 기반 수주 구조를 갖고 있으며, 대부분 프로젝트가 원가 보전 방식이라 관세 부담 전가가 가능하다.
LIG넥스원은 FCF가 5% 감소하는 데 그쳤고, EV기존 3조5966억원에서 3조4081억원으로 약 5.2% 줄어드는 데 그쳤다.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5조4861억원에서 5조2119억원으로 5% 소폭 하락해 고정 수익 기반의 안정성을 입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납품 계약 대부분이 정부와 연동돼 있어 직접적인 충격은 제한적이다. 현대로템도 방산 부문 수주에서 고정 단가 및 원가 보전 구조가 많아 방어 여지가 있다. 한국항공우주는 항공기 수출 부문에서는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국내 방위산업 수주는 정부 주도로 안정적이다.
아스와스 다모다란(Aswath Damodaran)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재무학 교수는 "DCF는 가정에 민감한 방식이며, FCF나 할인율(WACC), 성장률(g)이 조금만 변해도 기업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이번 시뮬레이션처럼 관세로 인한 FCF 감소는 단순한 손익 영향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 수익 모델 자체를 검증하는 신호라는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구리 가격에 따라 가격 전가 조항이 설정돼 있고, 환위험 헷지 전략도 이미 마련돼 있다"며 "실무에서는 계산만큼의 충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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