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스토리] 동해 지도 위 의문의 섬 ‘다즐레’…한국 해양과학이 다시 쓴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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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스토리] 동해 지도 위 의문의 섬 ‘다즐레’…한국 해양과학이 다시 쓴 항해일지

뉴스컬처 2025-07-13 10:41: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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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8세기 후반, 세계지도 위에 울릉도가 처음 그려진 방식은 지금으로선 낯설고도 흥미롭다.

1787년, 프랑스 탐험가 장 프랑수아 드 갈로, 백작 라페루즈(Jean-François de Galaup, comte de La Pérouse)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명을 받고 아시아 해역을 탐사하는 항해에 나섰다. 그 여정 중 동해를 거치던 그는 지금의 울릉도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 탐험대의 천문학자였던 다즐레(Dagelet)가 가장 먼저 그 섬을 관측한 데서, 라페루즈는 이 섬에 그의 이름을 붙여 ‘다즐레 섬(Dagelet Island)’이라 명명했다.

이러한 명명은 곧바로 유럽의 해도와 세계지도에 반영됐다. 이후 약 150년 동안, 울릉도는 ‘다즐레 섬’이라는 서양식 이름으로 기록되며, 서구인들의 지도 위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이는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아시아의 해안선을 탐사하고, 낯선 땅과 바다에 임의로 이름을 붙이며 '지리적 점유'를 선언하던 역사적 맥락과도 무관치 않다.

울릉도 전경. 사진=울릉군
울릉도 전경. 사진=울릉군

당시 조선은 여전히 대륙의 질서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바다는 경계이자 위협의 공간이었고, 탐사의 대상으로 인식되진 않았다. 울릉도 역시 조선 초기부터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인해 수백 년간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방치돼 있었다. 이렇듯 조선은 스스로 바다를 기록하거나 지도화하기보단, 내부적 안정과 육지 중심의 행정에 치중해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대한민국은 해양으로의 시선을 전환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 국가 주도의 과학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바다를 향한 한국의 도전은 완전히 다른 궤도로 접어들게 된다.

국립해양조사원이 건조하는 4천톤급 친환경 해양조사선. 사진=국립해양조사원
국립해양조사원이 건조하는 4천톤급 친환경 해양조사선. 사진=국립해양조사원

1972년, 한국해양조사연구소(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KIOST)가 설립되면서 한국 해양 탐사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당시 예산은 단 300만 원. 그러나 이 작은 시작은 이후 수십 년간 우리 바다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해저지형 측량, 해류 흐름 관측, 바닷물의 염도와 온도 조사 등, 처음엔 단순한 해양 데이터 확보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정밀한 해양 연구로 확장돼 갔다.

1980년대 들어서는 조사선 도입이 본격화되며 ‘이동식 과학실험실’ 개념이 탄생했다. 이 조사선들은 바다 위에서 물리학, 지질학, 생물학적 연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다기능 플랫폼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바다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눈과 손이 되어주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해양탐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심해까지 탐사 가능한 대형 조사선이 등장하면서 단순한 연안 탐사를 넘어, 수천 미터 수심의 심해 지질 조사, 자원 탐사, 해양 기후 분석 등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사부호’다. 2016년부터 본격 운항을 시작한 이사부호는 5,800톤급의 대형 해양조사선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탐사 장비와 자율 수중로봇(AUV), 멀티빔 측심기 등을 갖추고 있다. 태풍이 몰아치는 해역에서도 안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수심 8,000m 이상의 심해까지 접근 가능하다.

이사부호는 동해, 남해, 태평양 등지에서 해양지질 구조 조사, 지진 단층선 분석, 해저 자원(망간단괴, 천연가스 하이드레이트 등) 탐사에 활용돼 왔으며, 그 과학적 성과는 국제 학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현재 이사부호 외에도 ‘탐구21호’, ‘온누리호’, ‘ARAON(아라온호)’ 등 특수 목적 해양조사선을 운영 중이다.

해양 탐사는 단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 지구환경, 생물다양성, 자원 확보 등 국가 전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최근 인공위성을 이용한 해양관측 기술 확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심해 해양광물 탐사’를 위한 국제 협약 체결과 심해 시추기술 개발도 병행 중이다.

또한 수집된 해양자료는 동해 해류 변화에 따른 기후 예측 모델 개발, 수온 상승에 따른 수산자원 이동 분석, 지진과 해일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 등 실생활과 연결되는 정책에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남극 해빙변화 연구와 적도 해역의 해수산성화 현상 연구 등으로 탐사 범위를 지구 전체로 확장하고 있다.

울릉도가 ‘다즐레 섬’으로 불리던 시절, 우리는 바다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기술과 손으로 바다를 기록하고, 지도 위에 스스로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단지 울릉도라는 섬 하나를 되찾은 것이 아니라,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주권적 접근을 시작한 것이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해양강국’을 향해 항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양탐사 역량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차세대 스마트 해양조사선 개발 사업’, ‘해양위성 발사’, ‘심해 채굴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해양 탐사는 단지 과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곧 국가의 미래, 그리고 세계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과 직결된다. 낯선 탐험선이 조선의 해안을 따라 항해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우리가 그 바다를 항해하며 세계를 탐사하는 시대. 한국 해양 탐사의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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