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제도의 화산섬에서 자생하는 일부 야생 토마토가 수백 년 전 버린 독성을 되살린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UCR) 진화생물학 연구진은 지난달 1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진화는 일반적으로 한 방향으로 진행되며, 사라진 유전 형질이 다시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번 발견은 ‘진화의 되감기’로 불릴 만큼 이례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연구진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에서 자라는 야생 토마토의 알칼로이드 생성 능력을 분석했다. 알칼로이드는 식물이 외부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천연 방어물질이다.
연구팀은 지난해 6월에도 이 토마토의 독성 관련 유전자가 다시 활성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후 1년 동안 수집한 야생 샘플을 분석한 결과, 오래전에 사라진 고대형 알칼로이드를 실제로 만들어내고 있음이 확인됐다.
"과거의 독성을 되살린 매우 드문 사례"
UCR 소속의 진화생물학자인 애덤 조즈윅 연구원은 “진화는 일반적으로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잃어버린 특성이 동일한 유전 경로를 따라 되살아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이번 토마토처럼 과거에 있던 독성을 되살린 사례는 매우 보기 드물다”고 말했다.
알칼로이드를 만드는 효소의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한 결과, 단 4개의 아미노산만 바꿔도 고대 독성 물질을 다시 생성할 수 있었다. 극히 단순한 유전적 변화만으로도 수백만 년 전의 생존 전략이 되살아난 셈이다.
조즈윅 연구원은 “이번 사례는 진화가 결코 일직선으로만 흐르지 않으며,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생물의 유연성과 적응 능력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
환경의 차이가 만들어낸 ‘진화의 되감기’
연구진은 갈라파고스의 30여 곳에서 토마토를 수집해 현생종과 비교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토마토는 무독성 알칼로이드를 만들고 있었지만, 일부 화산섬에서 채집한 개체는 오래된 유독성 알칼로이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유전 특성이 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원인은 환경 차이 때문으로 분석됐다.
갈라파고스 제도 동쪽 섬은 지질학적으로 오래된 섬들이다. 토양이 성숙하고 영양이 풍부한 편이며, 생물 다양성도 높아 안정적인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이 지역의 토마토는 현생종과 비슷한 무독성 알칼로이드로도 충분히 생존이 가능하다.
반면 서쪽 섬은 상대적으로 형성된 지 오래되지 않은 화산섬이다. 토양이 덜 발달돼 있고, 생물 다양성도 낮아 토마토 입장에서는 생존 환경이 훨씬 더 열악하다. 따라서 해충이나 미생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독성이 다시 필요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조즈윅 연구원은 “서쪽 섬 토마토가 선택한 독성 물질은, 사실상 조상 토마토가 사용하던 방식 그대로였다”며 “현생 토마토의 유전체를 분석해 조상형 알칼로이드 생성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서쪽 섬 야생 토마토와 정확히 일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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