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경계에 서서 매일 사랑을 다짐하는 약속, 『반대편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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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명문장] 경계에 서서 매일 사랑을 다짐하는 약속, 『반대편에서 만나』

독서신문 2025-07-10 15:53:00 신고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직선의 시간 속에 살지 않는 여자들을 안다

유령과 함께 사는
심장에 세워진 비석을 매일 닦는

직선으로 말하지 않는 여자들을 안다

잘 지내지? 무심히 묻지 않는
진실이라 불리는 것에서 힘껏 멀어지려는

그런 여자들을 안다 

―‘시인의 말’ 중에서 


그해 여름에는 비명이 자주 들렸다
어떤 비명은 너무 아파서 입안에서 얼음 부서지는 소리로 덮기도 했다
그해 여름에는 잃기 쉽고 생기기 쉽고 꺼지기 쉽고 솟기 쉬웠다
얼음을 물고 매일 사랑을 다짐해야 했다

―「그해 여름 얼음」 중에서


걔 얼굴 안 쓰고 소리로만 웃는 거, 소름 돋지 않니?
어떤 이가 다른 이 욕하는 말을 들은 뒤로
그는 웃지 않기로 했다

완전한 바깥이 되지 않기 위해
안의 끄트머리를 꼭 쥐고 걸었다
(…)

같은 하늘을 머리 위에 두었다는 것이
유일한 안심인 사람이었다

―「테두리에 사는 사람」 중에서
 

맨 앞 칸도 마지막 칸도 보지 못했다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기차는 이미 통과 중이었고 지금도 계속 통과하고 있다
시작도 끝도 전체도 볼 수 없는 나는 오직 기차의 일부만을 본다
아주 긴 통과
현재에 도착하자마자 과거로 달아나는 미래


―「카비카 호스텔」 중에서 
 

당신을 흘려보낸 나는 어디를 통과하는 중일까
나 역시 태어나기 위해 죽어가는 중일까

반대편에서 만나
나는 흘러간 당신에게 약속한다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더라도
관통해본 사람은 어디든 존재하는 법을 알게 될 테니
반대편에서 만나

―「반대편에서 만나」 중에서


흙에는 지금까지 죽은 모든 여자가 있고
연필의 몸은 그들의 품에서 자랐지
그러니 연필을 꼭 쥐는 것은
그들과 한꺼번에 포옹하는 방법

겹겹의 체온에 기대어
끈끈한 체액을 흘리며

침묵의 소리를 받아 적는다
이름의 뒷면을 옮겨 적는다

내가 가두었던 검은 머리 아이가
사각사각 나타날 때까지

―「여름, 여름 아이」 중에서


『반대편에서 만나』  
송정원 지음 | 창비 펴냄 | 180쪽 | 13,000원
[정리=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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