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경험자와 가족이 설립한 캔드림협동조합이 예비사회적기업 예담라이프(후불제 상조회사, 대표 신선철)와 함께 진행하는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 공모전 6회 수상자로 유방암 경험자인 이하나 씨가 선정됐다.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 공모전은 예담라이프와 캔드림협동조합이 암경험자의 ‘암 이후 삶 이야기’ 중 한 편을 선정, 캔드림협동조합 조합원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물하는 나눔 행사다. 예담라이프가 이하나 씨에게 후원한 작품은 캔드림협동조합 조합원인 원정숙 작가(홍익대 미대 회화과 졸업)의 작품 '아침밥21’이다.
이하나 씨는 유방암 완치 후 연극 ‘여자 이발사’, ‘깊은 그리움’, 영화 ‘밀정’ 등에 출연한 배우로, 단편소설 ‘새벽 세 시, 별빛이 내릴까요?’를 쓴 작가로, 네트워크 사업가로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하나 씨가 쓴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02-2292-XXXX
낯선 번호다. 평소라면 02로 시작되는 번호는 잘 받진 않지만 그날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전화를 받았다. 한국무용 연습 가는 길, 버스정류장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겹쳐졌다.
“보호자랑 같이 오셔야겠어요.” “아, 네…”
애써 태연한 듯 무심한 듯, 전화를 끊고 어떤 생각으로 무용연습을 했을까.
병원으로 향하는 길, 지하철역 저 멀리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이 딱 봐도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벌써 눈시울이 벌개져 있다. 안 좋은 일은 왜 예상대로 일어나는 걸까.
‘엄마를 보낸 것도 모자라 내 차례라니… 억울하다. 왜, 왜 나일까?’
이런 생각도 잠시, 정신을 차리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는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큰 병원으로 전화를 돌렸다. 전화 몇 통으로 순식간에 일정이 잡혔다.
‘아, 아이들… 그래, 어찌 되겠지. 유방암은 쉬워, 흔해, 걱정 없어.’ 입술을 앙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나는 배우야.’ 배우랑 암이랑 무슨 하등이 연관이 있겠냐마는 그때는 그랬다. 공연 중에 수많은 역할을 맡았고 어떤 감정 상태라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수술과 항암, 방사선과 호르몬 요법… 하루하루가 무심한 듯 그렇게 흘러갔다. 항암으로 몸은 피폐해지고 소위 건강지표를 나타내는 모든 수치가 요동을 쳤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공연을 할 수 없다는 것, 아니 공연따위 생각할 힘이라고는 전혀 없는 축 늘어진 빡빡머리 아줌마라는 현실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영화판을 다니며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어울리고 연극배우의 자존감으로 꽉 채워졌던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된 건가…
암 치료하느라 오랜 시간 비워뒀던 쾌쾌한 지하 연습실에 들어가니 훅, 곰팡이 냄새가 코끝으로 사정없이 들어왔다. 밤낮없이 연습을 하며 그토록 행복했던 곳이었는데 여기서 암을 키우고 있었나, 생각하니 더 있다간 암이 도질 것만 같았다. 연습실을 처분하는 날, 눈물이 흘렀다.
암경험자 합창단... 노래로, 이야기로, 삶으로 목소리 내기 시작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암 경험자 합창단인데, 언니 혹시 함께 해볼 수 있을까?”
잠시 침묵. 숨을 들이쉬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래로, 이야기로, 삶으로.
코로나 상황으로 연습실 대신 줌으로 모여 오디션을 보고, 자기 소개를 하며 가사를 만들어갔다. 빡빡 머리를 감추고 아직 덜 올라온 눈썹을 그려 넣은 채, 우리는 웃고 울었다. 어떤 날은 모여서 연습을 하며, 그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자”는 말에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펜을 들고,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그리고 단편소설집 『인생은 아름다워』에 소설을 실었다. 암이 내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나는 무너진 자리에서 꽃을 심고 있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다음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몰라 이불 속에서 몰래 울던 나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아 있다. 암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 이후의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나의 선택이었다.
먼저 손을 내민다..."잘 살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암 경험자들을 만나면 나는 먼저 손을 내민다. “잘 살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당신의 삶에 더 멋진 계절이 올 거예요.”
그 말을 전할 수 있는 내가, 얼마나 럭키한 사람인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다.
암이라는 긴 겨울이 지나고, 나는 새로운 봄을 마주했다.
그 겨울은 나를 앎으로 이끌었고,
이제 나는 안다.
아름다운 삶은, 어느 계절이든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캔드림협동조합은 예비사회적 기업 예담라이프(후불제 상조회사)와 함께 진행하는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 공모전에 보내준 암경험자의 글, 수상자에게 선물로 준 아트 작품과 작가 이야기 등을 묶어 책을 12월쯤 출판할 예정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암과 함께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암경험자와 가족들에게 위안과 응원이 되어 줄 책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가칭)는 국립암센터(리본 스타트 업 프로젝트)와 북오션출판그룹 후원을 받아 제작될 예정이다.
그동안 진행된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 공모전 수상자와 수상자에게 증정된 아트 작품은 아래와 같다.
▷1회: 강진경 씨 (유방암), 시상품(작가) : SMILE(김희정 색연필 아티스트)
▷2회: 김예린 씨 (난소암), 시상품(작가) : 캔디(황세정 작가)
▷3회: 박준호 씨 (만성골수성백혈병), 시상품(작가) : 희망의 깃털(김소라 작가)
▷4회: 황혜란 씨 (난소암,복막암), 시상품(작가) : 해바라기(김민진 작가)
▷5회: 황영준 씨 (간내담도암), 시상품(작가) : 블랙아웃(김희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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