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2021년 11월,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영화 <퍼스트 카우> (First Cow)가 국내 정식 개봉했다. 총도, 쫓고 쫓기는 긴장도, 격렬한 감정 폭발도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라는 낯선 풍경 속에서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퍼스트>
서부극의 새로운 형식: ‘총’ 대신 ‘빵’으로 말하다
<퍼스트 카우> 는 1820년대 미국 오리건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사냥꾼들의 요리사로 떠도는 유대인 남성 ‘쿠키’(존 마가로 분)와, 숲속을 도망치다 우연히 쿠키에게 구해진 중국계 이민자 ‘킹 루’(오리온 리 분). 서로 말이 적고 조심스럽지만,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두 사람은 곧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퍼스트>
이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은 의외로 ‘빵 장사’다. 마을의 부유한 영국인 대지주의 집에 있는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몰래 훔쳐, 쿠키의 솜씨로 빚은 빵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빵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두 사람은 작지만 단단한 성취를 이룬다. 그러나 자본주의 초입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다.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을 쌓아올린 그들의 평온한 일상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말보다 중요한 ‘침묵’의 연출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퍼스트 카우> 에서도 특유의 ‘슬로우 시네마’ 스타일을 유지한다. 4:3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 자연음 중심의 사운드 디자인, 인물의 대사보다는 행동과 침묵에 무게를 둔 연출이 관객에게 조용히 다가온다. 빵을 굽고, 숲을 걷고, 강가를 바라보는 장면 하나하나가 풍경이자 감정이며, 서사로 작용한다. 퍼스트>
특히 라이카트 감독은 인물 간의 내면적 거리감과 연결을 시각적으로 섬세하게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쿠키와 킹 루의 관계는 감정 표현이 거의 없지만, 그들이 만들어가는 공간과 선택, 그리고 공존의 방식 속에서 관객은 진한 우정을 느끼게 된다.
생존의 기술이자 저항의 제스처
<퍼스트 카우> 는 단순한 서부극도, 먹방 영화도 아니다. 그것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규모 생존경제의 은유이며, 나아가 권력과 자본에 대한 조용한 저항의 이야기다. 퍼스트>
가난한 이민자 둘이 젖소 한 마리에서 짜낸 우유로 빵을 만들고, 그것으로 하루를 버티는 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불평등 구조 속의 생존 전략을 반추하게 만든다. 권력자의 눈에 띄는 순간, 그들의 자그마한 성취는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구조. <퍼스트 카우> 는 바로 그 위태로운 평화의 균형 속에서 묵직한 현실 인식을 전한다. 퍼스트>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영화는 프롤로그에서 두 남자의 유골을 먼저 보여주며, 결국 그들의 삶이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퍼스트 카우> 는 말한다. "당신의 삶이 비록 성공하지 못했을지라도, 서로를 의지하고, 함께한 순간이 의미 있었다면, 그것은 실패한 삶이 아니다"라고. 퍼스트>
이것이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보여주는 서사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패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존엄과 우정, 공동체의 가능성을 되묻는 것.
평단의 극찬과 관객의 여운
<퍼스트 카우> 는 제86회 뉴욕비평가협회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타임이 선정한 2020년 최고의 영화 TOP 10에도 이름을 올렸다. 국내 개봉 후에도 "기존 서부극의 공식을 깨뜨린 작품", "슬로우 시네마의 정수", "침묵 속에 우정을 새긴 걸작"이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퍼스트>
관객 평점 또한 8점대를 기록하며,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 이 시대,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강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퍼스트 카우> 는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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