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카페 레이서에서 영감을 받은 시그너처 모델 ‘씨유레이터’.
“탈것이 거리의 풍경을 바꾼다.”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컴파스로즈(Compass Rose)의 모토다. 컴파스로즈의 허자홍 대표는 클래식카 마니아이자 드 마크로스(De Macross)를 설립해 슈퍼카 에피크(Epique) GT 1을 직접 디자인 및 설계한 제작자다. 한 명의 천재 디자이너보다는 크리에이터들이 팀을 이뤄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지금, 디자이너 시대의 도래를 꿈꾸는 허자홍 대표는 컴파스로즈를 통해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자동차는 다시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의 일부로 자리하길 바라며 그는 모터사이클을 디자인한다. 단연 눈에 띄는 요소는 비비드한 컬러다. 색에 이끌려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양한 디테일이 즐거움을 선사하리라고 그는 확신한다.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 그리고 제작자로서 제품을 디자인하고 브랜드를 지휘하기에 머릿속 청사진의 구현은 순조롭다.
자동차에 대한 흥미는 어린 시절 피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가면 선물로 장난감을 사 오셨어요. 한 번은 폭스바겐 비틀 컨버터블과 람보르기니 쿤타치 장난감을 주셨는데, 형이 먼저 비틀을 골라서 쿤타치가 제 것이 되었죠. 토이 카를 갖고 놀며 스포츠카 라인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그는 미국 유학 시절 쿤타치를 실제로 마주했다. “고등학생 때 캘리포니아 페블 비치에서 머릿속에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스포츠카를 실제로 처음 봤어요. 쿤타치 LP5000 콰트로 발볼레였죠. 그걸 보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페라리의 역작인 테스타로사도 마찬가지고요. 그때부터 자동차에 대한 막연한 꿈을 품은 것 같아요.” 자동차에 매혹된 이후 교과서 한쪽이 자동차 그림으로 빼곡해졌다. 돌아보면 디자인을 훈련하는 과정이었다. 동시에 <먼나라 이웃나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이원복의 만화를 보며 그림의 아름다움에, 여행가 외할아버지가 세계 곳곳에서 모은 기념품을 통해 입체의 아름다움에 눈떴다.
1 모터사이클 디자인을 구체화한 스케치. 2 컴파스로즈 허자홍 대표. 3 허자홍 대표가 수집한 구둣주걱. 정교한 조각이 돋보인다.
상상 속 자동차가 현실로
자동차를 사랑한 나머지 제작하기에 이른 마니아는 어떤 차를 탔을까? 미국 유학 시절에는 최초의 국산 쿠페 모델인 현대자동차 스쿠프 터보를 몰았다. 허락된 예산 내에서 가장 좋은 신차 모델이었다. “스쿠프 터보를 운전해보니 생각보다 잘 나가는 차였어요. 그러나 친구들이 타고 다니던 유럽, 일본, 미국 자동차에 비할 수는 없었죠. 실력으로 그들을 이겨야 했기 때문에 그때 운전 실력이 늘었어요(웃음).” 자동차의 기계적 메커니즘에 몰두한 건 티뷰론이 계기였다. 한국에서 현대자동차 티뷰론 TGX를 타던 시절, 레이서에게 시합용 버킷 시트를 선물로 받았다. 마침 자동차 튜닝 붐이 불던 때라 자동차 잡지를 읽으며 부품과 공학적 원리를 공부했다. 하지만 그가 흥미를 느끼는 자동차는 1996년 이전 모델까지다. 충격을 안긴 쿤타치와 테스타로사 같은 디자인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자 아름다운 클래식카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 직접 생산하는 일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제작에 착수한 건 아니다. 결정적 순간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 신바시역 근처 포르쉐 매장 앞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시 포르쉐 모델의 디자인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더라고요. 매장을 둘러보며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까? 나라면 다른 식으로 접근할 텐데’ 생각한 거죠. 제가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928, 944 같은 독특한 모델이 있었거든요.”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 이듬해 그는 에피크 GT 1을 완성했다.
도로 풍경을 바꿀 모터사이클
2011년 공개한 에피크 GT 1은 허자홍 대표가 직접 디자인과 설계를 맡은 첫 번째 슈퍼카다. 여전히 새로운 자동차를 구상하고 있지만, 그보다 제작 규모가 작은 전기 모터사이클부터 상용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출범한 브랜드가 컴파스로즈다. 오토바이의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미국에서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미국의 자동차 TV 쇼 <제이 레노 개러지> 출연을 위해 LA에 방문했을 때 방학을 맞은 딸들과 GT 1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유치원생 둘째 딸의 말에 베벌리힐스에서 차를 세운 곳이 남성복 브랜드 비잔(Bijan)의 부티크였다. 부가티 베이론 등 희귀한 차가 입구에 전시되어 있고, 정복을 갖춰 입은 매니저가 맞이했다. 스토어 내부에는 1950년대 중후반 생산된 시합용 카페 레이서가 진열되어 있었다. 이후 그때 각인된 카페 레이서 디자인을 모티프로 설계한 모델이 바로 ‘씨유레이터(Ciulator)’다.
컴파스로즈는 2025년 6월 현재, 1950년대 영국에서 유행한 카페 레이서에서 착안한 플래그십 모델 ‘씨유레이터’와 엔트리 레벨의 전기 바이크 ‘댄드라이언(Dandelion)’을 공개했다. 클래식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씨유레이터가 컬렉터를 위한 모델이라면, 댄드라이언은 보편적인 소비자를 위한 입문용 모델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이름 붙인 댄드라이언은 그만큼 단순하고 직관적인 조작법을 도입했는데, 스마트 키를 옆면 삼각형 존에 태그하면 전원이 켜진다. 향후 씨유레이터와 댄드라이언 사이 스쿠터와 미들급 모델을 선보이며 4개 라인업을 구축할 예정이다.
“IMF를 기점으로 대기업이 작은 자동차 회사들을 인수 합병하며 시장이 급변했어요. 대기업의 기술력과 생산 과정이 보편화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회사가 보여줄 수 있는 개성이 사라졌잖아요. 다시 다양성이 갖춰지면 어떨까요? 젊은 세대가 컴파스로즈 제품을 보며 오토바이의 역사를 탐구할 수도 있겠죠.” 그의 스마트폰에는 앞으로 선보일 수많은 도안이 담겨 있다. 이미 완성된 형태로 머릿속에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는 구체화될 준비를 마쳤다. 그는 궁극적 롤모델이 페라리라고 말한다. “엔초 페라리의 고집과 타협하지 않는 열정을 존경해요. 몇십 년 후 미래의 젊은 세대가 우리 제품을 볼 때 제가 페라리를 보며 품은 감정을 느꼈으면 해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매달린 끝에 누군가의 꿈이 되는 일. 머지않아 도로에 퍼질 색색의 모터사이클이 그 씨앗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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