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자동차 운반선 입항 수수료 정책에서 한국 선박을 제외해 달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조선·해운산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동맹국인 한국 기업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조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7일(현지시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는 지난 4일 공동으로 의견서를 제출해 "자동차 운반선 입항 수수료 부과는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초래할 수 있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한미 양국 산업에 돌아갈 수 있다"며 정책 수정을 정중히 요청했다.
이는 USTR이 지난 4월 17일 발표한 '조선·해운산업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당 정책은 미국 항만에 입항하는 외국 건조 선박에 대해 일정 수수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자동차 운반선에 대해서는 수수료 부과 대상을 특정 국가로 한정하지 않아, 한국산 선박과 한국 해운사도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USTR의 이번 조치는 공식적으로는 '글로벌 조선업 불공정 경쟁 해소 및 미국 조선업 재건'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중국 국영 조선기업들이 정부 보조금과 저가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 그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평가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조치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 기업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 기아는 물론 차량 해상운송을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 등 주요 기업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건조한 선박을 운용중으로, 이들 선박은 연중 수십 차례 미국 항만에 입항한다.
산업계에 따르면 이 수수료가 실제 부과될 경우 차량 운송 비용이 건당 수천 달러씩 증가해 연간 수백억 원의 추가 물류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궁극적으로 차량 가격 인상 요인이 되거나, 미국 내 물류 체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의견서를 통해 "수수료 정책의 원래 목적이 중국 해운산업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 억제에 있는 만큼 그 의도가 왜곡되지 않도록 한국산 선박에 대한 구체적 예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현대차그룹이 발표했던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총 60억 달러 이상)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21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약속까지 언급하며 "한국은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 창출에 지속적으로 기여해온 파트너"임을 부각시켰다.
또 정부는 자동차 운반선은 항만을 반복적으로 출입하는 특성이 있다며, 수수료 부과 횟수에 상한을 설정하거나 일정 기준 이하의 선박에는 면제 규정을 적용하는 등 '세밀한 정책 설계'를 촉구했다.
업계는 이번 입항 수수료 부과 논란이 단순한 물류 문제를 넘어 한미 간 경제 협력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시작된 보호무역 조치가 예외 없는 일괄 적용 방식으로 추진되면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도 어긋날 수 있다"며 "경제 동맹국까지 무차별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미국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2025년 들어 다시금 강화되는 분위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미국 내 전략산업 보호와 중국 견제를 위한 각종 무역 장벽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고 여파는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확산되는 중이다.
현대글로비스 등 관련 기업들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수수료 정책이 본격 시행될 경우 대응 전략 마련에 분주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일부에서는 "만약 수수료가 현실화된다면, 비용 전가가 불가피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조치가 장기적으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동맹국까지 일괄 타격하는 규제를 시행하면, 결국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특정 산업에서의 초과 대응은 동맹국과의 경제 협력을 약화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입항 수수료 정책은 오는 10월 14일부터 시행될 예정으로, USTR은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서를 종합 검토한 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미국 측과 추가 협의를 이어가며, 한국 선박에 대한 예외 조항 반영을 지속 요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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