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봄 발표한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 조치가 금융시장 혼란 속에 보류된 지 90일, 그 유예 기간이 7월 9일 종료된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이 유예 기간 동안 전 세계 90개국과의 무역 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백악관 무역 고문 피터 나바로는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90일 동안 90건의 협정 체결이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90건의 협정은커녕, 이제 미국은 카자흐스탄(27%), 마다가스카르(47%), 태국(36%) 등 수십 개국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 처지에 놓였다. 이미 중국(55%), 멕시코·캐나다(25%)에 대해선 상당 수준의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기자들과의 브리핑에서 “유예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나라들에 편지를 쓰고 있다. 이제 그 과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관세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부 국가와의 협정은 체결됐다. 영국과의 부분적 합의, 중국과의 긴장 완화, 베트남과의 협상 타결, 유럽연합(EU)과의 ‘프레임워크’ 협상 진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협정이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이 아닌, 일시적인 휴전 또는 구매 약속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90일 유예를 연장하거나 추가 협정을 전격 체결하더라도, 현재 부과된 관세 수준 자체가 과거보다 훨씬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미국 소비자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골드만삭스 사장 존 월드런은 “올 여름 더 많은 인플레이션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JP모건체이스 인스티튜트 분석에 따르면, 미국 중견기업들은 전면적 10% 수입관세와 중국(55%), 멕시코·캐나다(25%)에 대한 고율 관세가 유지될 경우 연간 약 823억 달러(한화 약 110조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될 전망이다.
이런 중견기업들은 지역 경제와 공급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어, 부담이 가중되면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제롬 파월은 “누군가는 결국 관세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며, 제조업체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그 부담이 공급망을 따라 전가된다고 설명했다. 파월 의장은 “과거 데이터와 기업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종 소비자가 비용을 일부 떠안는다는 사실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관세는 다른 나라들이 내는 세금”이라며 미국 기업이나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보편적 10% 관세’ 조치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마이클 피어스 미국 담당 부대표는 “현재 시행 중인 전방위적 고율 관세는 단지 무역 보복의 수단이 아니라, 재정 확보의 효과적인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이 직면한 재정적 압박을 고려할 때, 관세로 확보되는 세수는 향후 어느 행정부에게든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유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분석은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시한 ‘일률적 10% 관세 부과’ 구상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그 여파가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철강, 반도체, 자동차 부품 등 핵심 산업군을 중심으로 관세 조치가 강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비용 구조의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9일 유예를 연장할지, 혹은 관세를 전면 재개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미국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글로벌 시장은 또다시 ‘관세 쇼크’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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