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넘어 삶을 설계하는 하이엔드 주방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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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넘어 삶을 설계하는 하이엔드 주방 가구

이슈메이커 2025-07-04 15:12:07 신고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디자인을 넘어 삶을 설계하는 하이엔드 주방 가구

김명일 ㈜미크래빗 대표ⓒ ㈜미크래빗
김명일 ㈜미크래빗 대표
ⓒ ㈜미크래빗

 


 - 럭셔리 주방을 넘어 삶의 품격을 바꾸다
 - 주방은 일의 공간이 아니라, 가족이 행복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브랜드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 손으로 만든 공간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따뜻하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친구 따라 넣은 이력서 한 장이 주방 가구 업계와의 첫 만남이었고, 파주의 창고에서 시작된 작은 시도가 지금의 미크래빗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후회, 그리고 다시 일어섬이 필요했다. 무너진 시기도 있었고, 무너질 뻔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김명일 대표는 말한다. 브랜드는 만들 수 있지만, 철학은 함께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이제 그는 주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단순한 가구가 아닌 삶의 품격과 감정을 디자인해 나가고 있다.

 

‘소수가 열광할 수 있는 제품, 철학이 담긴 주방’을 만들어가고 있는 ㈜미크래빗은 지난달 서초동으로 사옥을 확장 이전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견고히 다져가고 있다. ⓒ ㈜미크래빗
‘소수가 열광할 수 있는 제품, 철학이 담긴 주방’을 만들어가고 있는 ㈜미크래빗은 지난달 서초동으로 사옥을 확장 이전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견고히 다져가고 있다.
ⓒ ㈜미크래빗

 

시장과 타협하지 않는 감각과 철학의 뿌리
스물여섯, 친구 따라 넣은 이력서 한 장은 어느 청년의 인생을 바꿨다. 입사한 곳은 주방가구 업계의 대기업. 전공자도 아니고 경력자도 아닌 그 청년은 스스로를 ‘연필 한 자루 들고 나선 맨손의 청년’이라 회상한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주방이라는 공간이 단지 기능을 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감정을 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처음 몇 년은 즐거웠다. 새로운 걸 배워가며 디자인도 익히고, 시공 현장도 경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회의감이 쌓였다. 대중적이고 빠르게 소비되는 제품들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디자인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감각이 틀렸다기보다는, 시장이 자신의 감각을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이직을 단행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과 시장의 요구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컸고, 결국 청년은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기로 했다. 김명일 ㈜미크래빗(이하 미크래빗) 대표의 이야기다. 


  2012년, 파주에서 ‘MIK’라는 이름으로 2인 기업을 시작했다. 제품도 만들고, 영업도 하고, 시공도 직접 했다. 고객 한 명, 계약 한 건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브랜드 인지도는 없었고, 자연히 실적도 없었다. 자신을 믿어준 직원들에게 줄 월급도 빠듯했다. 김 대표는 “그때는 그냥, 내가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 믿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순진했죠”라고 회상하며 운을 뗐다. 


  몇 년 흐르지 않아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2014년, 서울 합정의 한 건물에 조용히 간판을 걸었다. 그곳이 바로 오늘의 ‘미크래빗’이 태어난 자리다. 브랜드의 이름조차 없던 그 시절, 그는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 ‘소수가 열광할 수 있는 제품, 철학이 담긴 주방’을 만들고자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선 것이다. 이는 그가 시장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설득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은 것이다. 그 믿음은 당시엔 위태로웠지만, 지금은 미크래빗이라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단단한 이유가 되었다.

‘타협 없는 정갈한 미학, 조용하지만 깊은 존재감, 디자인은 공간에 스며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김명일 대표의 철학은 결과물에 투영되어 높은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은 ㈜미크래빗이 시공한 현장 전/후 사진.
ⓒ ㈜미크래빗

 

디자인 하나로 시장을 설득하다
합정으로의 이전은 실패의 끝이자, 기회의 시작이었다. 파주에서의 경험은 뼈아팠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있었다. 김명일 대표는 ‘한 번 무너져보니 두려울 게 없더라’고 말했다. 자본도 명성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 ‘제대로 디자인된 주방’을 보여주겠다는 신념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한 번 더 시험해 보기로 했다. 고급 자재를 아낌없이 썼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냈다. 타협 없는 정갈한 미학, 조용하지만 깊은 존재감, 디자인은 공간에 스며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그렇게 서서히 형태를 갖춰갔다.


  기적처럼 찾아온 첫 기회는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인테리어 디자인 그룹과의 인연이었다. 이후 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 미크래빗 제품이 시공되면서 브랜드는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를 회상하는 김 대표는 “첫 납품 때는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했습니다. 제품을 넘긴 게 아니라, 제 전부를 맡긴 기분이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김 대표는 철저히 예약제로만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이 아니라,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주방. 대면 상담, 공간 분석, 맞춤형 설계, 수작업 가공을 원칙으로 하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았다. 대신, 한 사람에게 단 하나뿐인 주방을 만들겠다는 철학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5년이 지나서야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그사이 수많은 밤을 공장에서 보냈고, 수없이 많은 도면을 갈아엎었다. 그는 매출보다 먼저, 고객의 감탄을 원했다. ‘예쁘다’는 말보다, ‘왜 이제서야 이런 게 나왔냐’는 말이 더 기다려졌다. 이러한 그의 고집은 마침내 시장을 설득해 냈다.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계산 없이, 디자인 하나만으로 승부했던 시간은 결국 미크래빗이라는 이름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정점에서 찾아온 위기
합정에서의 반응이 본격적인 도약으로 이어진 것은 강남으로의 사옥 이전 이후였다. 김명일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다. 더 높은 브랜드 가치를 구현할 무대가 필요했고, 미크래빗만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완전한 하이엔드 전략’을 선택했다. 고급 수입 자재를 직접 공수했고, 예약제를 유지하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강화했다. 논현동에 위치한 쇼룸은 ‘디자인 철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고객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브랜드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왔다.


  수많은 브랜드가 주저앉던 시기, 미크래빗은 오히려 급성장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방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가 달라졌고, ‘감성적 가치’에 집중한 미크래빗의 전략은 정확히 그 타이밍을 꿰뚫었다. 상담은 줄을 이었고, 예약은 몇 달 단위로 꽉 찼다. 업계에서는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주방가구 브랜드가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실제로 미크래빗은 어느덧 1년 치 예약이 마감되는 브랜드가 되었고, 김 대표는 강한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위기는 가장 정점을 찍었을 때 찾아왔다. 지속적인 수요 증가와 매출 상승 속에서, 일부 거래처와의 현금거래가 문제로 불거졌고, 세무조사로 인해 브랜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무너졌죠. 매출이 끊긴 것도 충격이었지만, 가장 아팠던 건 저를 믿고 기다려준 고객과 직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는 사실이었어요.”


  당시 매출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고, 대표 본인의 개인 자산을 투입해 회사 운영을 버텨야 했다. 불과 1년 전까지 고공 성장을 자랑하던 기업은 한순간에 생존을 걱정하는 위치로 추락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힘은 시장이나 자본이 아닌, 바로 ‘사람’이었다.

평소 요리가 취미일 정도로 주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김명일 대표는 주방이 공간에 미치는 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주방이 삶의 공간을 따뜻하게 만드는 구심점이자 가족의 감정이 쌓이는 장소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미크래빗
평소 요리가 취미일 정도로 주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김명일 대표는 주방이 공간에 미치는 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주방이 삶의 공간을 따뜻하게 만드는 구심점이자 가족의 감정이 쌓이는 장소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 ㈜미크래빗

 

가장 힘들 때, 사람은 브랜드가 된다
강남 이전과 동시에 찾아온 위기는 누구에게나 가혹했지만, 김명일 대표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신뢰의 붕괴였다. 단순한 재정적 손실이나 이미지 추락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쌓아온 시간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뜻밖에도, 회사가 가장 힘든 순간에 지켜준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김 대표는 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팀원들과 솔직하게 모든 상황을 공유했다. 감추거나 꾸미지 않았다.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이자고 먼저 제안했고, 대표 자신부터 급여를 삭감했다. 그러자 직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누구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가 함께 만든 브랜드니까, 같이 지켜야죠”라는 말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특히 창립 멤버이자 기술의 중심에 있는 실무자들은 두 팔을 걷고 회사를 함께 지탱했다. 회복한 이후에 제안한 연봉 인상 제안에도 손사래 친 그들이었다. 


  미크래빗 내부에서는 대표보다 더 오래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브랜드보다 사람 간의 신뢰가 더 오래 쌓여온 구조였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가족 같다고 말하기엔 너무 무겁고, 친구 같다고 말하기엔 너무 깊은 존재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성과 중심의 경쟁 구조보다는, 협업과 존중이 바탕이 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의 날’, ‘자율 근무’, ‘직원 견학 프로그램’ 등 크고 작은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사람을 잃으면 브랜드도 잃게 된다”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단단히 정립하게 됐다. 그리고 이 철학은 위기 속에서도 팀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가 되었다. 수많은 브랜드가 성장의 순간 무너지는 이유는 내부의 균열 때문이다. 그러나 미크래빗은 외부의 충격 속에서도 내부의 중심을 지켜낸 팀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건 철저히 숫자가 아닌 사람의 힘이었다.

최근 ㈜미크래빗은 가죽 소재를 적용한 주방, 무늬목으로 제작된 내추럴 라인,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형 가구라인까지 확장하여 고객의 감각적 경험을 넓힐 예정이다. 사진은 ㈜미크래빗이 출시한 가죽 소재의 도어 모습.ⓒ ㈜미크래빗
최근 ㈜미크래빗은 가죽 소재를 적용한 주방, 무늬목으로 제작된 내추럴 라인,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형 가구라인까지 확장하여 고객의 감각적 경험을 넓힐 예정이다. 사진은 ㈜미크래빗이 출시한 가죽 소재의 도어 모습.
ⓒ ㈜미크래빗

 

가구를 넘어 감정을 짓는 공간으로
김명일 대표는 지금의 브랜드인 미크래빗을 ‘살아가는 감도를 설계하는 공간 디자이너’라고 표현한다. 주방을 단순히 조리 기능을 위한 장소가 아닌, 가족이 모이고, 관계가 이어지며, 일상의 감정이 흐르는 중심으로 본다. 그래서 미크래빗은 지금도 ‘제품’보다 ‘경험’에 집중한다. 자재의 등급이나 수납의 효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과 쓰면 쓸수록 손에 익는 배치, 그리고 요리가 일이 아니라 하나의 ‘기쁨’이 되도록 유도하는 설계 방식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김 대표는 이 모든 것이 ‘감정 중심의 디자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미크래빗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죽 소재를 적용한 주방, 무늬목으로 제작된 내추럴 라인,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형 가구 라인까지 확장하며 고객의 감각적 경험을 넓히고 있다. 주방을 중심으로 리빙, 다이닝, 웰니스 공간까지 포괄하는 미학적 확장은, 단순한 제품군 확대가 아니라 ‘삶 전체를 디자인하는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그는 명명했다. 그 기반에는 여전히 김 대표의 집요한 기준이 깔려 있다.


  “주방은 여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에요. 누군가가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를 안고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공간이죠.”
  그는 그렇게 가족의 감정이 쌓이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디자인은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쓰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미크래빗의 저력을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이렇듯 미크래빗은 오늘도 ‘가구를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삶의 공간을 따뜻하게 설계하는 브랜드로 현재도 진화 중이다. 그 진화는 더 크고 화려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향하고 있다.

 


김명일 대표는 주방을 설계하면서, 사람을 알아갔다. 공간은 곧 사람의 방식이며, 그 감도에 닿는 가구는 삶의 형태를 바꾸는 도구가 되었다. 수없이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늘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품은 혼자 만들 수 있지만, 브랜드는 함께 만드는 거예요”라고 그는 말한다. 미크래빗은 그렇게 ‘브랜드를 넘는 경험’으로 자라났다. 지금도 그는 한 장의 설계도 위에 누군가의 하루를 상상하며 선을 긋는다. 가구 너머의 감정을 설계하는 이 사람, 김명일 대표가 만드는 공간은 그래서 오래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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