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다습한 여름철, 산을 오르다 보면 낙엽활엽관목 중 하나인 닥나무가 눈에 띈다. 줄기를 꺾으면 ‘딱’ 소리가 나 닥나무라 불린다. 예부터 종이의 재료로 이름난 나무지만, 이 식물의 쓰임새는 훨씬 더 넓다. 약성, 섬유, 식용, 관상 가치까지 겸비해 예전부터 사람에게 익숙한 나무다. 지금도 종이 한 장부터 전통 의류와 약재, 토양 보호까지 그 역할은 여전하다.
닥나무는 뽕나뭇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저목(楮木) 혹은 저상(楮桑)이라는 한자 이름도 있다. 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남도 이남을 중심으로 전라도, 경상도 등 전국 표고 100~700m의 산지에서 자란다. 3m 안팎으로 자라는 키, 짧은 털이 있는 갈색 가지, 회갈색의 질긴 나무껍질이 특징이다. 양지바른 밭둑이나 경사지, 길가 등에서 잘 자라며 내한성이 뛰어나 추운 중부 내륙지방에서도 살 수 있다.
백피는 지폐, 흑피는 하급지 원료
닥나무의 가장 널리 알려진 쓰임은 종이 제조다. 수확한 줄기를 1~2m 길이로 잘라 솥에 넣고 두 시간가량 쪄낸 뒤 껍질을 벗긴다. 벗겨진 상태에서 바로 말리면 '흑피'라 부르고, 흑피를 물에 불려 겉껍질을 제거한 것을 ‘백피’라 한다. 백피는 창호지, 서류 용지, 지폐 등에 쓰이며, 흑피는 하급지나 일반 포장지의 재료가 된다.
닥나무 섬유는 질기고 부드러워 종이 외에도 옷을 짜는 데도 이용됐다. 고려시대부터 제지 원료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닥나무 재배를 장려했다. <경국대전> , <속대전> 등의 고문헌에는 재배를 명령하고 감찰까지 하도록 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당시 대호는 200주, 중호는 100주, 소호는 50주씩 강제로 심게 했을 정도였다. 속대전> 경국대전>
닥나무는 농작물 재배가 어려운 경사지나 밭둑, 제방에 심기에도 적합하다. 특히 섬유 채취를 위한 경제 식물로서의 가치는 현재도 유효하다. 줄기 수확은 2년째부터 가능하며, 보통 3~8년 사이가 가장 생산성이 높다. 12~13년이 지나면 수확량이 급감하기 때문에 이후에는 새로 심는다.
어린잎은 식용, 열매는 약재… 전통 치료에도 쓰였다
닥나무는 어린잎을 나물처럼 식용으로도 쓸 수 있다. 열매는 6~7월에 주홍빛으로 익는데, 한방에서는 ‘저실자(楮實子)’로 부른다. 양기 부족이나 수종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더 주목할 부분은 줄기, 잎, 뿌리껍질에서 얻는 약성이다. 여름과 가을철에 채취한 닥나무의 지엽(枝葉), 수즙(樹汁), 근피(根皮)를 말려 약용한다. ‘구피마(構皮麻)’라 불리는 이 재료는 거습, 이뇨, 활혈 작용을 해 류머티즘 통증이나 타박상, 부종, 피부염, 림프샘염 등에 활용됐다.
이처럼 닥나무는 약재로서의 가치도 적지 않다. 식물 하나에서 종이, 옷, 약재, 식재까지 모두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 농촌사회에서 유용한 자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양지 좋아하고 맹아력 뛰어나… 관리만 잘하면 재배 쉬워
닥나무는 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잘 자란다. 부식질 많은 사질양토를 특히 선호하며, 배수만 좋다면 밭, 길가, 경사지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린다. 내한성이 강한 만큼 우리나라 중부 이북 지방에서도 재배할 수 있다.
꺽꽂이, 분근, 휘묻이 등 번식 방법도 다양하다. 특히 맹아력이 강해 근처에서 새순이 쉽게 올라오며, 줄기를 꺾거나 묻으면 쉽게 뿌리를 내린다. 봄철 3~4월이나 초여름 6~7월 사이에 꺾꽂이를 하면 잘 자란다. 다만 과하게 습한 토양은 피해야 한다.
관리도 어렵지 않다. 해마다 줄기를 지상 5cm 위치에서 잘라 새 줄기를 키우고, 5~6년 차부터는 포기 하나에서 10본 내외를 수확하면 된다.
줄기 섬유는 햇수가 지날수록 거칠어져 매년 수확해 새로 자란 줄기를 쓰는 것이 좋다. 제지용, 섬유용 닥나무 재배 농가는 보통 이 기준에 따라 생산을 조절한다.
잎 자르면 흰 액 나와… 닥나무를 구별하는 법
닥나무의 잎은 길이 520cm, 폭 37cm 정도로 난형이나 난상 타원형을 띤다.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톱니 모양이며, 어린나무에서는 깊게 갈라지기도 한다. 앞면은 거칠고 뒷면엔 처음에 털이 있다가 점차 없어진다.
암수한그루 식물로, 5~6월경 잎과 함께 수꽃이삭과 암꽃이삭이 핀다. 수꽃은 가지 밑부분에, 암꽃은 가지 윗부분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수꽃 화피와 수술은 각각 4개, 암꽃은 통 모양 화피에 갈라진 끝과 실 같은 암술대를 가진다.
열매는 6~7월경 둥글고 붉게 익는데, 핵과 형태에 육질이 있는 겉껍질이 특징이다. 겉으로는 딸기와 비슷한 모양을 띠며, 안쪽 열매껍질에는 입상 돌기가 있다. 잎을 자르면 흰 액이 나오는 것도 닥나무를 식별하는 하나의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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