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 하나가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말을 믿기 어렵다면, 이상은의 방을 들여다볼 일이다. 거금 백만 원에 들여온 ASRock 라데온 카드 위에는 세계적인 오버클로커와 ASRock CEO의 친필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전원도 넣지 않은 채 비닐을 벗긴 그 순간, 성능이라는 본래의 역할은 ‘관상용’으로 교체됐다. 그는 웃으며 고백했다. “서명 받는 순간부터 이건 성능보다 상징성이 더 중요해졌어요.” 말끝에 묘한 해방감이 묻어났다.
이상은이 ASRock과 처음 마주한 건 고등학생 때다. X470 Taichi 보드에서 금속 톱니바퀴를 본 순간, 디자인이 주는 전율이 첫사랑처럼 심장을 뛰게 했다. Z590 타이치에서 실제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마주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그날 이후 그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면 내 마음도 돌아간다”라는 농담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첫 입덕 이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본체를 열었다 닫길 반복했다. 보드 스탠드오프 나사를 분실해가며 꾸준히 분해를 즐겼고, 급기야 서로 다른 제조사의 파워 케이블을 섞어 꽂았다가 보드와 파워를 동시에 태워먹은 사고는 그 설렘의 부산물이다. 이상은의 회고는 담담했다. “파워 터졌을 때 ASRock 서비스센터에 보냈는데 수리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충성심이 생겼어요.” ASRock의 가성비와 A/S는 그에게 일종의 보험 역할을 했다.
돌이켜 보면 이상은의 지출 구조도 독특하다. 생활비의 절반을 PC 부품에, 40 퍼센트를 서브컬처에, 나머지를 식비로 나누는 ‘수학’이 그의 일상이다. 미개봉 상태로 쌓인 메인보드만 열 장 남짓, 그래픽카드 세 장, 파워서플라이와 굿즈까지 합치면 5~6백만 원어치가 방안을 작은 박물관으로 만든다. 사용 계획이 없는 물건을 계속 사들이는 이유를 묻자, 이상은은 단호했다. “영화 포스터를 벽에 걸어두듯, 내게는 메인보드가 예술품이에요. 전시 자체가 사용이죠.”그는 이를 “사적 박물관”이라 칭한다.
컴퓨텍스 2025 참관 역시 덕질의 연장선이었다. 현장에서 X870 OCF를 처음 보자마자 “다음 컬렉션 목표”를 확정했다. 그는 극한 오버클럭용 보드라도 디자인이 예쁘면 무조건 산다고 했다. 스마트폰 지출 앱에는 PC 부품 소비 내역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한 달 용돈 십오만 원으로 시작한 덕질은 이제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유지된다. 그는 “졸업 후 취업하면 지금처럼은 못 사겠지만 새 보드 하나, 그래픽카드 하나씩은 꾸준히 들일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초창기의 Polychrome Sync 같은 RGB 제어 소프트웨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꽃놀이’라며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개선이 되었단다. 디자인 또한 예전처럼 과감하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방열판을 전부 덮어버리니 기판이 숨을 못 쉬는 것 같아요. 톱니바퀴 같은 독창성을 되살려 줬으면 해요.” 그러면서도 그는 신형 X870 OCF 발표 소식에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오버클러커용 보드가 이렇게까지 예뻐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줄 것 같아요.”
친구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왜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느냐’는 질문이 가장 흔하지만, 고장 난 컴퓨터를 들고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친구도 끊이지 않는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애즈락 전도사가 된 기분이에요. USB 포트가 많고 가성비 좋은 모델을 추천하면 다들 만족하더라고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아직 비닐을 벗기지 않은 메인보드 박스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그는 말했다. “ASRock은 제2의 고향이에요. 여기 있어야 안심이 돼요.” 짧은 선언 같았지만, 그 안에는 첫 설렘과 숱한 시행착오, 그리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컬렉션 예고까지 담겨 있었다. 방 한구석에서 톱니바퀴 문양이 빛을 반사하듯, 이상은의 애즈락 서사는 앞으로도 계속 돌고 돌 것이다.
[국가공인 1호 애즈락 괴짜 마니아 이상은과 1문 1답]
Q. ASRock과 처음 만난 순간이 그렇게 강렬했나?
A. 고1 때 X470 Taichi를 봤어요. 방열판에 금속 톱니바퀴 디자인이 정말 미쳤다 싶었죠. 그날부터 제 PC는 ‘ASRock only’로 고정됐어요. Z590 타이치에서는 실제 톱니바퀴가 돌아갔어요. 이건.. 진짜...
Q. 왜 쓰지도 않을 제품을 계속 사는가?
A. 누군가 영화 포스터를 액자에 넣어두듯, 전 메인보드를 전시해요. 전시 자체가 소비 목적이라서요.
Q. ASRock을 쓰면서 가장 만족한 점은?
A. 첫째는 디자인. 둘째는 바이오스가 직관적이라 세팅이 편해요. 셋째는 국내 A/S. ‘수리됩니다’라는 한마디에 신뢰도가 확 올라갔죠.
Q. 가장 아쉬운 점은?
A. Polychrome Sync처럼 소프트웨어가 불안정해요. RGB가 제멋대로 폭주하곤 하거든요. 예전처럼 기판이 부분 노출되고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과감한 디자인도 요즘은 줄어들어 아쉬워요.
Q. 주변 친구들은 어떤 반응인가?
A. ‘왜 저러냐’와 ‘고장 났으니 고쳐 달라’가 동시에 와요. 메인보드 USB 포트 많은 모델 추천해주면 다들 만족하더라고요.
Q. ASRock에 꼭 전하고 싶은 한 문장은?
A. 제발 소프트웨어만 고쳐 주세요. 하드웨어는 이미 충분히 멋있으니까요.
By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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