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전시장을 들어서며 눈으로 좇게 되는 것은 작품뿐만 아니라 텍스트도 있다. 전시장의 벽 또는 초입 어딘가에 놓인 한 장의 종이에 전시를 만들어낸 여러 생각과 말들이 담겨있다. 작업을 파해치듯 풀어놓는 이야기부터 작업을 다시 단단히 조여매는 단어들, 그 사이를 지나는 알쏭달쏭함 속에서 향기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몇 년 전 친구와 미술관에서 공유되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전시장에 배치된 서문과 벽에 레터링 된 글이 어렵게 느껴지던 경험을 나누며 일정 부분 공감이 가득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모든 전시장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텍스트는 작품 앞에서 열리던 마음도 막아서듯 단호히 어려운 말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스스로도 부족했던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지금보다 자주 했던 것 같다. 레터링 된 벽 앞에 서서 한 문장을 눈으로 왔다 갔다 하고 읽고 또 읽으며 결국 뒤 문장들은 버리듯 남겨두고 발걸음으로 옮겼던 경험이 있다.
스스로의 무지를 탓하다가도 또 다른 전시에서 이해가 쉬운 텍스트를 마주하는 경험으로 어려운 글로 치부되는 텍스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작품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그 텍스트가 단숨에 이해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욕심은 아닐까’라는 생각은 고집처럼 항상 따라붙는다.
전시장의 접근성이나 관람객의 특성을 정확히 나눌 수는 없겠지만, 전시장에 오는 인원을 고려한 텍스트의 배치는 필요할 수 있겠다 싶다. 최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모두에게: 초콜릿, 레몬네이드 그리고 파티’전을 보았다. 쉬운 글이 모든 캡션에 달린 것을 보며 공립미술관의 특성이 잘 보인다는 생각과 함께 주변에 온 가족 단위의 인원들과 가볍게 즐기는 시민들 사이에서 그러한 캡션이 더욱 정당하게 느껴졌다. 위아래를 번갈아 읽었을 때 작품에 대한 이해에는 쉬운 글보다 설명적인 부분에 치우친 글이 편했지만, 쉬운 글은 쉬운 글 나름대로 역시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전시의 어느 시점부터 쉬운 글만 쓱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모든 것을 쉽게만 풀어내었을 때 발생하는 열린 왜곡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글은 무엇일까? 쉬운 글은 친절한 글일까? 이해가 쉬운 글일까? 어려운 글이 예술이라는 것에 장벽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꼭 나쁜 일일까? 장벽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거칠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장벽을 허물어서 더 많은 인원이 유입되고 그 안에서 많은 관람객과 콜렉터가 생기는 것만큼 장벽 발생하여 예술이 단발성의 일상적인 예술적 표현과는 차이가 있는 가치를 발견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주기적으로 한다.
예술이 조금 더 학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기 위해서 아카데믹한 이야기는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쉬운 글 해설들과 그렇지 않은 텍스트가 함께 놓여 있을 때, 관심을 가진 이들이 쉬운 글 해설이라는 커튼을 열고 그 뒤에 있는 텍스트까지 다가오는 적극적인 관람의 태도를 갖게 된다면 쉬운 글 해설이 곳곳에 배치된 전시장에서도 그 깊숙한 곳까지 즐겨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쉬운 글이 단순히 쉽고 매력적이기보다 누군가의 이해를 돕는 여러 개의 방법 중 하나의 방식으로 존중받게 되었을 때, 그리고 글을 쓰는 이가 관람객을 고려하여 한 번 더 수정하게 되었을 때, 그런 개인의 노고들이 합쳐져야만 전시장의 텍스트를 모두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는 걱정 어린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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