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추경)의 여파로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900조원을 넘어섰다. 전체 국가채무 중 적자성 채무 비중은 71%에 달해, 빚의 '양'뿐 아니라 '질'까지 나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 부양과 복지 확대를 목표로 한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향후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30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25년도 제2회 추경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차 추경을 반영한 올해 국가채무는 1300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결산 대비 약 125조4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이 중에서도 대응 자산이 없는 국고채 등 '적자성 채무'는 923조5000억원으로, 1차 추경 당시 이미 90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다시 22조6000억원이 늘었다. 추경 재원 대부분이 일반 재정 지출을 충당하기 위한 국채 발행으로 구성되면서 적자성 채무의 급증세가 지속된 셈이다.
반면, 국민주택채권·외평채 등 스스로 상환 가능한 자산이 있는 '금융성 채무'는 오히려 2조8000억원 줄었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에서 적자성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70%를 넘어선 71.0%를 기록했다.
이는 2019년 56.4%에서 6년 만에 15%포인트가량 상승한 수치로, 국가 재정의 구조적 불균형이 빠르게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적자성 채무는 2019년 407조6000억원 수준이었으나, 2024년에는 815조4000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은 14.9%에 달해 금융성 채무 증가율(2.7%)을 크게 상회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향후 국가 재정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적자성 채무는 일반세로 상환해야 하므로, 이자 지급이 늘어날수록 실제 지출 여력은 줄어든다. 2025년 한 해에만 적자성 채무 관련 이자비용이 약 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향후 재정 지출 수요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경기 활성화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8세에서 18세까지 확대하고, 정부와 부모가 함께 기여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또 기초연금의 부부 감액 구조 개선, 소득에 따른 연금 감액 완화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 공약이 단계적으로 현실화될 경우 향후 5년간 추가로 필요한 재정은 약 2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구조조정과 조세지출 정비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상황에서는 상당 부분을 국채 발행 등 적자성 재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처럼 적자성 채무가 빠르게 늘고 있음에도, 정부는 아직 별도의 관리 목표를 세우지 않은 상태다. 재정당국은 앞서 재정준칙 법제화를 통해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국가채무 총량 기준에 그친다.
정부가 발표한 '2024~2028년 국가채무관리계획'에도 "적자성 채무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포괄적인 원칙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목표 수치나 이행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이자 부담을 포함한 재정 경직성 확대 문제에 대응하려면, 정부가 적자성 채무에 대한 보다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재정은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악화'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적자성 채무가 전체 국가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복지지출 확대가 본격화되면 재정 건전성 저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순한 채무 총량 규제를 넘어, 적자성 채무의 증가 속도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책적 기준과 단계별 대응 전략을 명확히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자 지출 확대와 재정 운용의 경직성에 대한 사전 대응 없이는, 향후 경기 둔화 시 '증세'나 '복지 축소'와 같은 극단적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정책 기조 속에서, 정부의 재정 운용 전략이 국가의 중장기적 신뢰와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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