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6월 29일까지 열린 ‘조선민화전’은 민화라는 장르에 대해 우리가 지니고 있던 일방적 시선을 해체하고 다시 직면하게 한다. 민화는 대개 ‘소박함’이나 ‘풍속화’라는 이름 아래 한켠에 배치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 전시는 민화를 하나의 자율적인 시각 장르로 복권시킨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리고 그 전시 흐름 속에서 특히 한 폭의 병풍 - 백납도 병풍은 말없이 가장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그림을 '이야기'로 만드는가?”
백납도(百納圖)란 문자 그대로 다양한 그림 조각들을 모아 만든 회화 형식을 말한다. 그러나 ‘백 개를 모은 그림’이라는 명칭은 단지 수적 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병풍을 마주한 관람자는 각 장마다 독립된 이야기와 이미지를 목격한다.
수박을 자르는 여인, 새와 나무, 책가도처럼 구성된 선반, 거북이와 복숭아, 꽃과 사군자. 이 병풍은 특정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일상의 조각화된 심상(心象)이다. 어떤 서사가 부여되어 있지 않지만, 그 안에는 정서의 밀도가 겹겹이 쌓여 있다.
전시장의 조도는 병풍의 색감을 선명히 살리면서도 그림에 과도한 해설을 강요하지 않는다. 감상자의 시선은 병풍 앞을 자연스럽게 천천히 걷게끔 유도되었다. 이 병풍은 우리가 ‘작품을 본다’기보다는 ‘작품 사이를 걷는다’는 체험을 제공한다. 병풍이라는 형식은 원래 감상자의 이동을 전제로 한다. 각 폭의 시점은 조금씩 어긋나 있고, 역원근법이 적용된 사물 배치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시키기보다는 측면과 여백, 간극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
백납도 병풍은 조선 후기 가정의 공간을 장식하는 회화라는 기능성을 드러낸다. 이 병풍은 궁중의 격식을 반영하지 않으며, 민간의 실내 장식이자 상징의 집합체로서 존재했다. 여기에는 장수를 뜻하는 복숭아, 번영을 의미하는 물고기, 입신양명의 꿈을 담은 책거리 이미지 등이 조합되어 있다.
병풍의 기능은 단순히 시각적 장식이 아닌, 삶의 기원을 시각적으로 품는 장치에 가까웠다. 전시는 이 병풍을 단지 ‘민화’라는 이름으로 구획 짓기보다는 병풍이라는 매체의 구조적 특성과 그 안에 담긴 시선의 조직 방식에 주목한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