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는 빠르고 효율적인 자본집행 모델의 대명사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올봄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기점으로 ‘위험 분산’ 전략의 실효성을 묻는 시험대에 올랐다. 1조2000억원에 달하는 홈플러스 관련 대출은 단일 자산군 중심 담보모델의 리스크, 회생절차 내 채권 회수 현실성, 사회적 파장까지 복합적 이슈를 담고 있다. 본지는 이를 통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드러난 구조적 리스크와 메리츠의 투자모델에 생긴 균열을 심층 분석하고 메리츠의 현황과 향후 과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홈플러스가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1조2000억원을 대출해준 메리츠금융그룹의 회수 전략이 금융권 안팎에서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메리츠는 담보신탁 수익권이라는 강력한 법적 권리를 보유해 회생절차와 무관하게 자금을 우선 회수할 수 있는 우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매각가와 시장 상황, 사회적 책임이라는 복합 변수들이 맞물리며 실제 회수율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매각이 청산가치 이상으로 성사되면 원금 전액은 물론 일부 이자까지 회수할 수 있다. 반면, 매각이 실패하거나 기대 이하로 마무리되면 메리츠는 수천억원대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그룹 전체 건전성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 관련 매각 경쟁과 가격 방어를 위해 ‘스토킹호스’ 방식을 채택했다. 예비 인수자와 조건부 계약을 먼저 맺은 뒤 공개입찰을 진행해 더 좋은 조건의 인수자가 나타나면 교체하는 구조다. 이로써 매각 절차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졌다.
대주주 MBK파트너스도 2조5000억원 상당의 보통주 전량을 무상 소각해 인수대금 전액을 채권단에 귀속시키면서, 인수자는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사업 본체만 인수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메리츠의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적 정비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제 매각 가격과 조건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시각이다.
M&A부터 청산·회생까지…메리츠 운명 좌우할 3대 시나리오
메리츠가 보유한 담보는 전국 약 60개 점포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신탁 수익권으로, 보수적으로 설정돼 원리금 회수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무엇보다 담보신탁 수익권은 일반 담보물권과 달리 회생절차에 종속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2015다200111 등)에 따르면 담보신탁 수익권은 회생계획 강제 인가 여부와 관계없이 행사 가능한 별도의 재산권으로 인정된다. 이른바 ‘도산절연’ 효과다. 메리츠는 법원이나 채무자 동의 없이 담보 자산을 처분해 우선 회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점포 일괄 처분 시 전국 유통망 붕괴와 2만여 명 대규모 실직이 우려돼, 담보권 행사에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 홈플러스는 130여개 점포와 6000여개 협력업체를 거느린 대형 유통망으로, 단순 부동산 매각 이상의 사회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책임론 제기도 거론되며, 담보권 행사가 사실상 ‘금기 카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홈플러스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청산(정리절차) 시나리오다. 사업 지속이 불가능해 자산을 매각해 빚을 갚는 경우다. 메리츠는 담보권을 통해 우선 대출금을 회수하지만, 매각 대금 부족 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일부 점포 매각으로 메리츠가 1조원을 회수해 대출 잔액은 1조2000억에서 1조1000억원으로 줄었다. 청산은 가장 빠른 회수 방법이나 고용 유지 등 사회적 책임 문제로 현실적 난관이 많다.
둘째, M&A 성공 시나리오다. 새로운 인수자가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경우로, MBK가 지분 전량을 무상 소각해 인수자가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사업 본체를 넘겨받게 된다. 인수자가 대출금을 상환하면 메리츠는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다만 매각가가 3조7000억원 이상으로 형성돼야 메리츠가 원금과 일부 이자를 전액 회수할 수 있다. 매각가가 이보다 낮으면 회수 금액이 줄고, 손실 가능성도 커진다.
셋째, 회생(법정관리) 시나리오다. 법원의 감독 하에 최장 10년간 상환 계획을 수행하며, 메리츠는 분할 상환을 받는다. 10년 내 대출금 전액 회수가 어렵고, 남은 채무는 법원 판단에 따라 탕감될 수도 있다.
현재 홈플러스는 법원의 인가 전 M&A 추진 허가를 받고, 삼일PwC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해 인수자 모집을 본격화하고 있다. 성공적인 M&A가 이뤄지면 메리츠는 대출금을 전액 회수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본격적인 회생절차로 전환된다.
‘누가, 얼마에 홈플러스를 살까’ 관건…인수 후보와 현실성은?
M&A 일정과 인수 후보에도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MBK와 홈플러스는 법원에 인가 전 M&A를 신청했고, 법원은 6월 20일 매각 절차 개시를 허가했다. 이후 삼일PwC가 매각 주관사로 선정됐으며, 인수자 모집과 실사, 계약 체결 등은 앞으로 약 2~3개월간 진행될 전망이다.
인수 후보로는 네이버, GS리테일, 한화그룹, 쿠팡, 알리익스프레스 등이 거론된다. 기존 대형마트 사업자(이마트, 롯데쇼핑, 농협 등)는 오프라인 유통 성장 둔화와 고용 승계 부담, 부채 문제로 적극적 참여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네이버는 커머스 사업 확장, 한화는 유통 진출, GS리테일은 익스프레스 인수 경험 등 시너지 효과가 기대돼 상대적으로 유력 후보로 평가된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유동부채 2조6000억원, 유동자산 8000억원, 4년 연속 영업손실 등 재무 부담이 큰 상태다. 2만명 이상 고용 승계, 정책 불확실성, 상장사 주주 반발 가능성 등 인수 난이도도 높다. 현재 공식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없으며, 인수자 선정까지도 2~3개월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한편 메리츠는 채권단 대표 자격으로 실사와 입찰 과정에 참여하며 매각 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법적 권리를 바탕으로 협상 주도권을 확보했으나, 권리 행사보다 협상을 통한 실질 회수 극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무리한 담보권 행사보다 인수자 부담을 줄여 매각을 성사시키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절충점을 찾으려는 게 메리츠 전략”이라며 “사회적 책임과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요구받는 메리츠는 향후 3개월 내 매각 성사 여부에 따라 손익과 그룹 전략 전반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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