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경의 드로잉 텍스트] 망신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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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경의 드로잉 텍스트] 망신의 효과

문화매거진 2025-06-24 21:36:09 신고

▲ 류호경, 드로잉, '경험', 디지털페인팅, 2025
▲ 류호경, 드로잉, '경험', 디지털페인팅, 2025


[문화매거진=류호경 예술가] ‘망신’은 명예나 체면이 손상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망신을 당하면 부끄러움과 굴욕 등이 느껴지고 화가 나기도 한다. 여러모로 매우 불쾌한 일이기에 당연히 우리는 망신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 언제 망신을 당할까? 무지가 드러날 때, 실수했을 때, 치부가 드러날 때 등 다양하다. 심지어 타고난 환경이나 성장배경이 불우하거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누명을 쓰거나 오해를 받는 등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망신당할 일은 생활하는 대부분의 반경에 널려있다. 사람은 살아가려면 행동하고 표현해야 하는데 망신의 이유가 위와 같이 너무 많아서 위축되곤 한다. 그래서 해야 할 말이나 일을 미루거나 감추고 포기한다. 우리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그렇다. 아마 많은 미술가들 역시 그럴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작업으로 표현을 하는데, 내놓은 작업물이 좋은 평을 받지 못하거나 팔리지 않거나 관심받지 못하면 망신을 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작업 자체도 힘든데 외부의 반응도 살피고 자기검열에까지 시달리다 보면 작업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회의에 빠지거나 의욕과 동력을 잃고 작업을 미루거나 아예 절필까지 한다. 하지만 삶은 망신이라는 수업료를 내야 성장과 발전이라는 대가를 내어준다.

무지로 인한 망신의 대가는 지식이나 정보이고, 바르지 못한 언행을 했을 땐 망신의 대가로 예의와 건강한 사회성을 배우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망신을 당한 경우에도 얻을 것이 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대처하고 방어하며 살아남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겪은 이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며 연대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선 사회 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망신을 당했을 때 느끼는 불쾌한 감정과 생각들, 이를테면 수치심, 죄책감, 좌절감, 후회, 자책 등은 우리가 염치를 알며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신의 잘못으로 망신을 당하고도 뻔뻔스러운, 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그들은 염치도 없거니와 자신에게든 타자에게든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언행이 거칠고 의미 없는 공허한 삶을 살며 성찰도 하지 않고 타자든 자신이든 돌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포함해 어떤 삶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장하지 못하고 얄팍한 욕망만을 좇으며 단지 육체적 수명에 의한 삶을 연명할 뿐이다.

▲ 몽당 미술연필들 / 사진: 류호경 제공
▲ 몽당 미술연필들 / 사진: 류호경 제공


망신을 당했을 땐 그 후에라도 태도와 대처가 중요하다. 이불만 발로 찬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 뭐라도 얻고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작가라면 영감을 받을 수도 있겠다.

망신은 심신의 고통을 주며 생채기를 내지만 그만큼 살을 단단하고 질기게 만들어주기에 마냥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니다. 작가에게 대입해보면 작업자로서 갖춰야 할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작품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물론 망신을 통해 교훈을 얻고 성장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등 에너지가 들지만 불쾌한 경험 그대로 놔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불쾌한 감정과 생각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수차례 경험해봐서 장담할 수 있다). 그러니 관점을 조금 바꿔서, 망신은 우리의 도전, 시도, 모험 등 성장과 성숙에 필요한 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내야 할 부작용(side effect)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는 작문이라고는 학창 시절 글쓰기 수업에 써봤던 것과 신세 한탄을 배설하듯 쓴 일기가 전부인데,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 지금의 내 지적 수준, 인성, 문장력이라면 망신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라면 이것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문장력이 좋아질 수도 있고 공부와 성찰이 깊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부족한 인성이 성숙해질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나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신당할 생각에 설레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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