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보테로① “예술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아야 한다.”에 이어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그는 사회적 문제를 그림으로써 고발하기도 하였습니다. 행복과 사랑, 평화를 사랑한 그에게 폭력은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2003년 있었던 이라크 전쟁에서 생포된 포로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수많은 고문들을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여러 점 그렸습니다.
2004년 5월, 뉴요커지에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고문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탐사 기자 세이무어 허쉬의 기사를 비행기 안에서 읽던 페르난도 보테로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사를 덮은 보테로는 곧바로 비행기 안에서 스케치를 시작했습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보테로는 매일 8시간씩, 일주일 내내 그 사건에 대한 작품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뚱뚱한 사람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기억합니다만 아부그라이브 작품은 달랐습니다.
14개월 동안 그는 집착하듯 작업에 몰두했고, 결국 85점의 그림과 100점 이상의 드로잉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2005년 북미 9개 미술관에서 대규모 순회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부그라이브 시리즈도 포함하고 싶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2006년 11월, 뉴욕 말버러 갤러리에서 드디어 전시가 열렸습니다. 관람객들 앞에는 무장 경비원이 배치되었고, 전시장 게시판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보테로는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았고, 미국을 두 번째 고향처럼 여겼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보여준 미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에 크게 실망했고 미국이 외면하고 싶은 이 진실을 그림으로 그려 이 인권침해의 잔혹함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 사건은 인간 본성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만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최근 더욱 그러한 현상은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역할에 심취하여 자신이 정의의 심판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저마다의 상황이 다릅니다. 심지어 ‘나’라는 사람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른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내 기준에 맞을 리가 없습니다.
보테르는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준이 맞지 않을 경우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거실에 걸고 싶은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늘 사회현상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철학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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