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실패를 사랑하는 건 우리의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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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명문장] 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실패를 사랑하는 건 우리의 직업병

독서신문 2025-06-16 11:54:57 신고

매일 그리는데, 정말 매일같이, 내 전부를 바쳐가면서 그리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좋아해주지도 않는 삶 속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확신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절대로 할 수 없다. 그것은 요조로 살고 있는 현재에 비추어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단 한 사람의 악플에도 순순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음악이 구리다, 당신의 글이 구리다 폄하하는 사람에게 나는 언제나 동의해왔기 때문이다. _「건강하고 튼튼한 예술가가 되는 법」

나는 이제 밥을 먹다가 곡이 안 써진다고 눈물을 흘리는 대신 곡이 안 써지는 속상함을 이렇게 원고로 쓴다. 그러면서 마음의 헛헛함도 고료도 알뜰살뜰 챙기는 살림꾼이 되었다. 어딜 가도 뮤지션 요조입니다, 하고 스스로를 소개하지만 대체로 하는 일은 언제나 음악가의 일이 아니라 작가 혹은 책방 대표의 일이다. 이것이 아주 가끔 태만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_「겁쟁이 음악가의 친구」

예전부터 소망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시인이 아니라 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네.” “시적인 사람이 구체적으로 뭔가요.” “지는 사람요.” 이런 대화를 하곤 했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시적인 상태가 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언제나 이기고 싶다. 그래서 늘 지는 사람이 아니라 져주는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 _「시는 언제나 어렵고 그것은 나에게 아주 쉬운 일이다」

이것은 시와가 시와 아닌 것이 되는 데에 실패한 앨범이었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너무나 시와다운 앨범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못하고) 딱딱하게 앉아서 차례대로 노래를 들었다. _「너의 이름에 바칠 수 있는 코드」

하는 것은 어렵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어려운 그 기분. 그런 기분이 찾아올 때 나는 주로 ‘질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수현을 생각할 때나 곡 작업이 안 풀릴 때, 돈이 너무 없을 때에도 그렇게 질 수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래서 내가 결국 이긴 건지 진 건지 잘 모르겠다. _「그저 막상막하로써 — 김숨, 『L의운동화』를 읽고」

그저 내 짐작이 맞았다는 데에서 오는 쓸쓸한 쾌감, 그리고 승부에서 진 사람의 열패감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헤어졌어’가 아니라 ‘내가 졌어’라고 연애가 끝났음을 알렸다. _「답답하면서도 어쩐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의 굴레」

그리고 너무 어려워 아득했다. 영 알 수 없는 내 발목의 문제처럼. 나는 마치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는 내장의 영역으로 들어와 나를 나로 만들어주고 있는 무수한 혈관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_「Between Us」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_「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2007년 공식적으로 데뷔한 이래 내 이름은 요조이고 이 이름은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라는 책의 주인공에서 따온 것이라는 말을 정말 열심으로 말해왔다. 무려 약 13년간의 광고였던 셈이다. 그러나 “요조? 요조숙녀의 요조인가요?”라고 묻고는 자기 혼자 웃기다고 웃는 사람을 아직까지도 제법 만난다. 그러면서 내린 두 가지 결론이 있다.

1. 내 주변 훌륭한 직업인의 공통점: 토할 만큼 반복해온 말을 매번 처음 하는 것처럼 한다.
2. 지난 13년간 말해왔는데도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시사하는 점: 앞으로 평생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더라도 사람들이 지겨워할 리 없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제는 했던 말을 반복하는 일에 제법 느긋한 사람이 되었다. _「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고 싶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모국어를 쓰면서 정상에서의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그 틈에 조용히 서서 여기까지 올라온 태도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모든 걸 이렇게 하자. 책방도 음악도 글도, 내 나머지 인생 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이렇게 하자. _「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지음 | 마음산책 펴냄 | 236쪽 | 14,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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