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아침 출근길에는 CBS FM 이나 KBS클래식을 듣는다. 김용신 방송에서 읽어주는 책이야기가 좋은데, 지난주에 들은 나희덕 산문집의 한 대목이 좋았다. 바스의 오래된 빵집을 이야기 하는 문장들, 여행하는 나를 이야기하는 문장들이다. 제인 오스틴의 그곳 아닌가. 바로 상호대차로 대출해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이 가장 좋았다. 비를 떠올리면서 런던 바비칸 센터의 전시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곳을 설명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얘기하는 산문이다. 산책자로서의 결이 같음을 발견할 때 마음이 편해지고, 지지를 받는 느낌이 든다. 한걸음씩의 계속. 그래서 일종의 영양제처럼 이런 책은 계속 읽어야 한다.
그러나 깊은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글이 부유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겉을 이야기하는 듯한. 시가 아니라서 그럴까. 여행지를 언급하는 솔깃한 유혹도 잠깐이었다. 그래서 후반부는 좀 아쉬웠다. 예를 들면 작가에게 힘든 일이 무엇인지 꼭 알고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힘든 일이라는 두루뭉술함이 진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오랫동안 머물렀던 영국이라서 그런지 그 구체성이 가장 좋았다. 빵과 시계, 자주 들르는 가게 같은. 글쓰기에서 구체성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 생각했다. 마리아 칼만과 유진목을 생각했다.
시 같은 낱낱의 문장들도 좋았다.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등을 돌리고 걸었다는 문장이나, 쓸쓸한 소실점에 한 걸음씩 걸어 도착하려 한다는 서문처럼 말이다.
"영국 바스에 가면 생긴 지 삼백년도 더 된 빵집이 있다. 살리 런이라는 프랑스 여인이 이 집에서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은 1680년이라고 한다. 부드럽고 둥근 빵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토핑으로 얹어 내오는데, 아주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기다려서 먹은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빵집에 자주 들렀다는 제인 오스틴이나 찰스 디킨스 등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고, 지하에는 작은 빵 박물관도 있다. 이쯤 되면 빵을 먹는다고 하기보다는 빵에 깃든 역사와 기억을 맛본다고 해야 할까.
문학 속에서 한 시간은 한 시간이 아니다. 향기와 소리와 계획, 분위기로 가득찬 화병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의 이 말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일상적 시간에 대항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일이다.
번민에 잠겨 있을 때, 청년 말테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이 말을 기억해냈다. "말테야, 너는 소원을 비는 것을 잊지 마라. 소원을 비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돼. 이루어지는 것은 없더라도 소원을 품고 있어야 해. 평생 동안 소원을 계속 품다보니, 그것이 이루어지질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소원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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