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현장] “퀴어는 멈추지 않는다”…무지개 행렬, 광장 이후 ‘내일’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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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현장] “퀴어는 멈추지 않는다”…무지개 행렬, 광장 이후 ‘내일’을 비추다

투데이신문 2025-06-14 21:18: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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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운영진이 무지개색 천을 나눠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br>
14일 오후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운영진이 무지개색 천을 나눠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14일 오후 제26회 서울 퀴어 문화축제 당일에는 평일에 예보됐던 우천 소식이 무색하도록 화창하고도 뜨거운 날씨가 이어졌다. 이날 축제 현장에는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나타내듯 무지개로 무장한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서울 퀴어 문화축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어우러져 즐기는 장을 만드는 것을 비전으로 매해 여름 서울에서 개최되는 복합·공개·문화행사다.

2023년과 지난해에 이어 서울시청 광장 사용 인하를 받지 못한 주최 측은 남대문로와 우정국로 일대에서 몰려드는 무지개 행렬을 맞이했다. 올해 주최 측은 약 17만명의 시민이 축제에 방문했다고 추산했다. 역대 퀴어 문화축제 중 최고 인원이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된 서울 퀴어 문화축제에는 군인권센터, 기본소득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변희수 재단 등 성소수자에 연대하는 70여개의 다양한 부스가 행사장을 장식했다. 퍼레이드는 오후 4시부터 진행됐다.

부스가 길게 늘어선 문화축제 현장 중에서도 성소수자 불교 모임 부스, 성소수자 MBTI를 검사해주는 부스 앞은 유독 북적였다. 이른 오후 머리 위로 쏟아지는 뙤약볕과 숨 막히는 밀집도에도 시민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웃음을 나눴다. 각자의 정체성과 관심을 공유하며 부스를 둘러보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낯선 이와도 금세 대화가 오갔다.

이날 오전에는 지난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낙선한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도 축제에 방문했다. 그는 퀴어 엘라이(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니지만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 대통령 후보를 자처한 인물로, 당시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소수자 관련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14일 오후 2025 서울 퀴어 문화축제 운영진이 무지개색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14일 오후 2025 서울 퀴어 문화축제 운영진이 무지개색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정체성·나이·국적 불문한 ‘모두의 축제’...“스스로를 드러낼 기회”

이날 퀴어 문화축제에는 무지개만 알록달록한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개성도 가지각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각자의 정체성은 알 수 없지만 축제라는 존중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화합하는 모습이었다. 모두의 손에 공통적으로 들려 있는 부채, 손 피켓, 가방 등 무지갯빛 물건이 소수자간의 연대를 보여주는 듯했다.

여자친구와 축제에 동행한 40대 A씨는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규명했다. 그는 무지개 옷을 차려입은 반려견을 소중히 안고 인터뷰에 응했다. 퀴어퍼레이드에 처음으로 참가했다는 그는 “이제껏 뉴스로만 봐 왔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축제를 찾았다”며 “중년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젊은 퀴어분들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고 감상했다.

이번 퀴어 축제에는 외국인 참가자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축제장 입구에서 무지개 망토와 모자를 쓴 채 외국인 친구를 기다리던 중국 국적의 30대 초반 B씨는 “성소수자가 아닌 친구를 대할 때는 본의 아니게 항상 거짓말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원래는 굉장히 활발하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타입의 사람인데 국내에는 이 같은 기회가 너무 적어서 아쉽다. 오늘을 충분히 즐기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인 여자친구와 동행한 독일 국적의 C씨는 성소수자 만남 주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인연이 3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퀴어 문화축제에 2년째 참여한 그는 “한국에는 퀴어 문화축제에 반대 집회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며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대놓고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런 좋은 의미의 축제에 애인과 함께 올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앞으로도 항상 함께했으면 좋겠다”며 애정을 표했다. 그와 동행한 D씨는 “언젠가 함께 유럽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도 이 근사한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평소에 한국어로 소통하지 않아서 애정 표현에 어색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 밖에도 축제에는 자신의 특별한 성적 취향을 나타내거나 성소수자 자식을 둔 부모들, 페미니스트 단체 등 다양한 시민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연대의 의사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에 걸음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몰렸지만 축제 내내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내걸린 깃발들. ⓒ투데이신문<br>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내걸린 깃발들. ⓒ투데이신문

연대의 광장, 그 이후…퀴어가 소망하는 ‘다시 만난 세계’

올해 퀴어 문화축제에 참여한 이들 중에서는 지난 12월 윤석열 탄핵 광장 집회에 참여한 소수자들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광장에 참여하면서 얻은 포용의 경험과 자신감이 이번 퀴어 문화축제를 찾은 계기가 돼 줬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 집권 이후 첫 퀴어 문화축제인 만큼 참여자들의 표정은 변화를 향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이 바라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불편 없는 사회’, ‘혼인 신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사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없는 교육이 이뤄지는 사회’였다. 

‘여자친구의 법적 배우자가 되고 싶어’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한 20대 중반 E씨는 “지난 겨울 광장의 분위기가 이번 퀴어 문화축제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고 느낀다”면서 “매주마다 광장에 나가 집회에 참여하면서 노동자, 성소수자분들과 함께한 사람으로서 ‘연대가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소수자들이 탄핵에 앞장서 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며 “특히 차별금지법의 경우 소수자 연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너무 필요한 법안인데 지금은 그 단어 자체가 여러 가지로 오염된 것 같다. 인식 개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14일 오후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석자들이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 ⓒ투데이신문<br>
14일 오후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석자들이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퀴어문화축제 부스에서 남자친구와 ‘생활동반관계, 남녀 간 외 혼인관계 신고 및 증명서’를 작성한 20대 초반 F씨는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깰 기회가 많지 않다. 특히 남성 집단 안에 있다 보면 혐오와 차별에 쉽게 노출되게 된다”며 “성소수자에 대해 알려진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을 성교육이 시급하다. 이번 정부가 청소년 교육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짚었다.

E씨와 F씨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원하는 연인과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는’ 사회를 꼽았다. F씨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서 법적인 권리를 얻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중환자실에 배우자가 실려가도 보호자로서 권리를 얻지 못하는 현실은 바뀔 필요가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인을 달래며 서로를 감싸안는 그들의 뒷모습으로부터 간절한 소망이 드러났다.

퀴어 당사자는 아니지만 축제를 즐기기 위해 현장을 찾은 엘라이 G씨는 “올해는 유달리 깃발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며 “광장에 모였던 지난 겨울의 경험이 소수자에 대한 연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퀴어 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이날 나눠준 책자를 통해 “우리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도 거리에서 춤추며 행진했고, 서로의 존재를 웃으며 응원했다”며 “이 축제를 통해 한국 사회는 서서히 변화해 왔고, 성소수자의 삶 역시 조금씩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지금도 혐오와 차별은 이상 속에 공존하고 있고 성소수자의 권리는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랑과 존엄, 연대를 위해 축제를 열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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