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한일 두 나라 손에 들린 사기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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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득 칼럼]한일 두 나라 손에 들린 사기그릇

이데일리 2025-06-13 0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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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탔는데 바닥 한 귀퉁이가 없었다. 타이어에 튄 자갈이 차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일이 기억에 선명하다. 택시 차창 밖으로는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있는 거리 풍경이 펼쳐졌다. 산들이 하나같이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이었다. 한국전쟁 때 땔감용으로 모두 잘려나가 썰렁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의 일본어판 평전을 2020년 여름 펴낸 건축가 오쿠노 쇼씨. 그가 신 창업자의 지시로 서울에 추진하는 롯데호텔 건립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973년 1월 2일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느낀 감정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이 고성장 궤도에 진입했다고는 했어도 그가 조금 전 떠나온 도쿄에 비하면 서울은 도로 등 도시 기반 시설과 교통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전 행간에 드러난 그의 속마음은 회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였다. “이런 곳에 과연 초대형 현대식 호텔과 백화점, 오피스를 지어도 장사가 될까” 라는.

그로부터 50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지금, 오쿠노 씨를 놀라게 했던 옛서울은 천지개벽의 대변화를 겪으며 전혀 딴 모습의 도시가 돼 있다. 삶의 질, 주거 여건, 기타 기반 시설 등 어느 것에서도 일본의 대도시들에 비해 꿀리지 않을 세계적인 매력의 도시로 달라져 있다. 상당 부분은 더 낫다고 자부해도 될 수준까지 치고 올라갔다. 서울 한 곳의 변화로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진 일본을 숨가쁘게 추격한 한국이 거둔 뿌듯한 성과다.

한 일간지의 주일특파원이 이달 초 한일 관계에서 눈여겨볼 만한 기사 하나를 전해 왔다. 지난달 8일 도쿄 아자부의 주일 한국대사관 뒷정원에서 열린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일본 국회의원 가족 모임”소식이다. 모임에는 내각 서열 2위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으며 고노 다로 전 디지털상, 야마구치 나쓰오 전 공명당 대표 등 유력정치인 30여 명이 함께 모여 바비큐를 먹고 퀴즈 게임도 즐겼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대표적 지일파이며 한일의원연맹 회장까지 역임한 문재인 정부의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2021년 1월 부임하고도 1년 반이나 지나서야 처음으로 일본 외무상을 면담했던 것에 비하면 180도 확 바뀐 변화다.

오쿠노 씨의 회고에서 주일 한국대사관의 파티에 이르기까지 필자가 주목한 50년의 시간 속 단어는 ‘국력’과 ‘국격’이다. 경제력은 물론 모든 면에서 국가 힘을 키우고(하드 파워), 이를 바탕으로 그에 맞는 격(소프트 파워)을 갖출 때 외교는 물론 민간 교류와 국민 상호 이해의 수준도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순 있지만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처음으로 5000만원을 돌파했다. 달러 환산 기준, 3만 6745달러로 2년 연속 일본 추월이다. 밑바닥 뚫린 택시가 서울 시내를 달리던 시절에서 이제는 국민소득이 일본을 제칠 만큼 성장한 나라, 해마다 세계 무대 위상이 높아지는 이웃 국가에 일본, 일본인이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한 해 1천 200만명 이상의 양국민이 서로 오가고,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도 역대 최고 수준에 올랐다 해도 두 나라 관계는 아직 사기그릇이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단번에 깨져버리는 물건이다. 그리고 이 그릇을 박살 낼 변수는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외교 갈등이다.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는 이재명 정부까지 출범해 외교 전선에 쏟아질 메시지의 내용과 무게가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주일대사관저의 파티가 또 열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두 나라 국민 마음에 또 돌덩이가 얹어질 것인가. 양국민의 시선은 정상들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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