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지은 기자] 용서를 구하는 행위 ‘사과’. 그런데 요즘 연예계에서의 사과는 그 본질을 완전히 잃었다. 사과를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다. 기준은 없고, 감정만 있다. 마치 피의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듯, 여론은 연예인의 사과를 심문하고 평가하고, 때로는 아예 “사과할 자격도 없다”라고 선을 긋는다.
최근 몇몇 연예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무릎 꿇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필 사과문, 고개 숙인 인터뷰 영상, 혹은 프로그램 하차까지. 하지만 사과의 방식이나 시점, 말투,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되고, “왜 이제야 사과하느냐”, “진정성이 안 느껴진다”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연예인의 사과는 어디까지 해야 충분한가? 왜 대중은 그 사과를 끊임없이 되묻고, 또 되씹는가? 물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유명인에게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지금 대중은 사과의 목적보다 타이밍과 형식, 심지어 표정까지 샅샅이 분석하며 “내가 납득할 때까지” 무릎 꿇으라고 요구한다. 진심이 보이길 바라면서도, 또 의심한다. 끝없는 불신의 악순환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여론 재판대가 누구에게나 공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같은 실수에도 어떤 연예인은 ‘상남자’, ‘상여자’라며 용서받고, 어떤 연예인은 ‘내로남불’이라며 매장당한다. 대중의 감정선에 닿느냐 못 닿느냐에 따라 판결이 갈린다. 이쯤 되면 사과는 ‘도박’이다. 잘못은 분명했지만, 사과해도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연예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서울 도심에 가수 보아를 향한 악성 낙서가 확산되고 있다. 강남역, 신논현역, 역삼대로 등 서울시 강남구 일대의 대중교통 정류장과 광고판 등에 보아를 향한 비판이 낙서로 이어지고 있는 것.
이에 팬들은 경찰과 관할 구청, 보아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등에 신고한 후 자발적 낙서 지우기에 나섰다. 한 팬은 X를 통해 “강남역에서 신논현역 사이에 있는 낙서 다 지웠다”라며 “아티스트가 혹여나 이 낙서를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방치할 수 없어 바로 지웠다”라고 알렸다.
실제 보아는 온라인 여론에 민감하게 대응해온 인물이다. 그는 절친한 방송인 전현무의 자택에서 음주 상태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논란이 일었을 당시에도, 직접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보아는 “저의 경솔한 언행과 발언, 미성숙한 모습으로 불편함을 느끼셨을 모든 분께 사과드린다”라며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언급하고 실례가 되는 발언을 한 점에 대해 박나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줄 수 있는 무게감을 잊지 않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사과했다.
최근 정치색 논란에 휘말린 모델 겸 방송인 홍진경 역시 끝없는 비판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홍진경은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2일 개인 채널에 여러 장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나 그가 줄곧 붉은색 상의를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색 논란이 불거졌다. 대선 본투표를 하루 앞두고 특정 정당이 연상되는 색상의 의상을 착용했다는 것. 당시 누리꾼들은 “왜 하필 이때 빨간색을”, “티를 못 내서 안달이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논란이 계속되자 홍진경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한국에서의 생활과 너무 동떨어져 오랜 시간을 해외에 있다 보니 긴장감을 잃었던 것 같다.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제가 잘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고, 명백히 제가 잘못한 일”이라며 “모두가 민감한 시기에 여러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 드린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사과에도 비난이 이어지자 홍진경은 지난 10일 자신의 채널을 통해 “제게 진짜 소중한 딸이 있다. 우리 딸아이 인생을 걸고 말씀드리겠다”라며 일정상 사전투표 이전인 지난달 21일 출국해 투표조차 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홍진경은 “빨간 옷을 입고 피드를 올리는 순간 어떠한 특정 후보·정당도 떠올리지 않고 아예 한국 생각이 없었다”라며 “심지어 ‘이게 빨간색인데 올려도 될까’ 싶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었다”라고 재차 해명했다. 이어 “제 말이 진실이라면 저희 딸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원하는 대로의 삶을 잘 살게 될 것이다. 제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하는 일마다 다 망하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거고 3대가 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도 붉은색 의상을 착용해 논란이 됐다. 카리나는 지난달 27일 개인 채널에 장미 이모티콘과 함께 일본 길거리에서 숫자 ‘2’가 적힌 빨간색 점퍼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장미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의상을 착용했다며 경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카리나는 팬 소통 플랫폼에 “마이(팬덤명), 걱정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라며 “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계속 오해가 커지고, 마이가 많이 걱정해서 직접 이야기해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저도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행동하겠다. 다시 한번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카리나와 홍진경의 일부 영상에는 지금도 ‘보수 연예인’, ‘경솔의 아이콘’이라고 적힌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예인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의 사과 역시 때로는 미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마저 ‘연기’로 소비하는 지금의 분위기라면, 그 어떤 사과도 변화의 출발점이 되긴 어렵다. 이미 무릎 꿇은 이들에게 더 낮게, 더 오래 엎드리라 강요하는 이 흐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가.
이지은 기자 lje@tvreport.co.kr / 사진= 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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