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새 정부 장·차관과 공공기관장 등 주요 공직 후보자에 대해 '국민 추천'을 받기로 하면서 정부 부처 등 관가는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이 더 큰 모습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장·차관은 국정을 함께 수행하고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국정 이해도나 전문성이 검증돼야 하는데, 자칫 '인기 투표'로 전락할 수 있는 데다 이번 추천제로 장·차관 인선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다양한 인재를 최대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1일 각 부처에 따르면 전날 대통령실이 장·차관 후보자를 비롯해 고위급 인사를 국민들로부터 추천받겠다고 발표하자 대부분의 부처들은 "장·차관 추천제 같은 건 처음 들어본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처음 봤다"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정무직인 장·차관은 통상 각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인재풀 가운데 대상자에 대한 인사 검증 후 대통령이 발탁하고 이 중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는데, 그간의 관례를 깨고 인재 추천을 국민을 통해서 받겠다고 하면서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이재명 정부는 오늘부터 일주일간 '진짜 일꾼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며 "국민 여러분의 집단 지성을 적극 활용해 국민을 위해 진정성 있게 일하는 진짜 인재를 널리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장·차관 추천은 인사혁신처가 운영하는 국민추천제 홈페이지에 추천 글을 남기거나 이 대통령의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또는 이메일(전자우편) 등을 활용해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접수된 추천 인재는 인사 검증 절차를 거쳐 정식 임명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인사 검증 절차는 동일하다"며 "추천을 하는 것이지 인사 검증 절차를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장·차관 국민추천제에 대한 관가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당혹감이 역력한 모습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차관 국민 추천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내부에서도 감이 못 잡는 분위기"라며 "후보 추천을 해서 인사 검증 후 임명하겠다는 건지, 형식적인 절차인 건지 감이 잘 안 온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일선 과장도 "셀프 추천을 해보려고 국민추천제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봤다"며 "이메일로도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신청이 되던데, 이렇게 수많은 추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문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반 국민이 고용노동 분야의 전문가들을 알기는 쉽지 않다"며 "단순히 '저 사람이 잘할 것 같다'고 해서 추천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 분야의 전문성이 있느냐 하는 부분이 우려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과장도 "우리 부처럼 (예산 편성 정책 등) 정부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처의 장·차관을 국민 추천을 통해서 뽑는다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국민추천제가 전문성은 배제된 채 '인기 투표'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일반 국민은 '유명인'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책 결정과 현장 실무는 다르다"며 "예를 들어 '훌륭한 소방관'이라 해도 그 분은 현장 실무자이지, 정책은 국가의 운명을 다뤄야 하는 것이라 그런 부분이 걱정된다"고 했다.
실제 국민추천제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각종 추천 글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추천하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는 영화감독 봉준호, 가수 겸 배우 아이유 등이 언급됐으며, 방송통신위원장에는 진보 진영의 지지를 받는 방송인 김어준이 추천됐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인기 투표처럼 추천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장·차관으로 뽑을 순 없지 않겠냐"면서도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은 '정치인'이니까 이들을 적극 입각시키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어차피 누군가를 (장·차관으로) 앉히는 데 (국민 추천이라는) 명분을 구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특별하게 '정말 새롭다' 하는 사람이 나올까 하는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
각 부처에서는 이번 국민추천제로 장·차관 인선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쳐야 하는 장관급 인선에 앞서 이 대통령이 바로 임명할 수 있는 차관급 인선을 이번 주 우선 실시해 새 정부의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후 늦어도 이번 주에는 차관 인사가 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차관 인사부터 뒤로 밀리는 것 아니겠냐"며 "추천제로 장·차관 인선이 더 늦어지면 정책도 지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전날 이 대통령이 기재부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급 6명의 인사를 일부 단행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장·차관 인선은 국민추천제를 통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도 "우리 부는 '기후에너지부' 신설 이슈도 있어서 장·차관이 빨리 지명될 것이란 얘기가 구체적으로 있었다"며 "그런데 (국민추천제) 뉴스를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민추천제에 대한 기대감도 감지된다.
폐지 기로에 놓였다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이 예고돼 기사회생한 여성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 부 정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여가부를 잘 이끌어주실 분이 많이 추천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복지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의정 갈등의 경우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정무적 감각이 있는 분이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다양한 인재를 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과장급은 "국민추천제를 감히 해석해보자면 최대한 폭넓게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며 "대통령실이 갖고 있는 인사풀이 제한적일 수 있는데, 인재는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기존의 추천 받는 채널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는 거니까 부정적으로 볼 것은 없는 것 같다"며 "여러 후보를 고려하고 있다가 국민추천제로 추천된 인사가 있으면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추천제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과 함께 '보여주기식'이 아닌 국민에게 신뢰 받는 '진정성 있는'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장·차관은 정부의 이념, 철학, 코드를 공유하며 함께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데, 국민추천제로 가능할까 싶다"면서도 "보수 정권에 있었어도 능력을 인정받은 자를 발탁한다면 진정성이 인정될 것"이라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국민 추천을 받더라도 기본적인 국정에 대한 이해도나 방향, 능력 등을 충분히 검증을 해야 한다"며 "아울러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형식적이거나 보여주기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공동 취재 박영주 안호균 김동현 강지은 구무서 임소현 고홍주 여동준 손차민 임하은 정유선 성소의 권신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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