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면 고창 인근 해변에 낯익은 새가 돌아온다. 몸집은 작지만 날개는 길고 날렵하다. 하얀 배와 회색 날개, 검은 정수리와 흰 이마. 부리는 노란색이지만 끝이 검다. 제비를 닮아 이름 붙여진 쇠제비갈매기다.
쇠제비갈매기는 어떤 동물일까
도요목 갈매깃과에 속하는 철새로 국내 서해안과 남해안, 도서 지역에 번식 목적으로 찾아온다. 번식기가 끝나는 7월이면 둥지를 떠나 9월 무렵 동남아시아나 호주 북부로 이동한다.
국내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이 관심대상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만큼 쇠제비갈매기의 서식 환경은 위협받고 있다.
'바다의 수호신' 쇠제비갈매기
쇠제비갈매기는 해변과 갯벌을 날아다니며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는 존재다. 일부에서는 이 새를 ‘바다의 수호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해양 생물 간의 먹이사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멸치나 작은 청어, 갑각류를 먹는 쇠제비갈매기는 연안 생태계에서 먹이 개체 수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먹이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병들거나 약한 개체를 우선적으로 제거해 어류 개체군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쇠제비갈매기가 사라지면 이 구조가 무너진다. 약한 개체가 제거되지 않으면 질병이나 개체 과잉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 종의 급증은 결국 다른 생물 자원의 감소로 이어지며 연쇄적인 생태계 붕괴로 번질 가능성도 높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변화는 연안의 유기물 정화 능력이다. 쇠제비갈매기는 살아 있는 먹이뿐 아니라 죽은 물고기나 부유하는 유기물도 먹는다. 이는 해변의 부패 속도를 늦추고 악취나 수질 악화를 막는 역할로 이어진다. 쇠제비갈매기가 사라지면 바다에서의 유기물 처리 시스템 하나가 빠지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바다의 수호신’이 사라질 경우 인간이 누리던 갯벌과 해안의 자연환경도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쇠제비갈매기가 멸종위기인 이유
쇠제비갈매기는 번식지 선택에 매우 민감한 습성을 보인다. 둥지는 주로 조용하고 넓은 모래밭이나 자갈 해변에 움푹 파인 간단한 형태로 만든다. 별다른 지붕이나 벽도 없이 땅 위에 알을 낳는다. 인간이나 동물이 접근하면 금세 자리를 비운다. 한 번 떠난 둥지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해수욕객, 낚시객, 반려견 산책, 드론 촬영 같은 무분별한 활동은 번식 방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몇몇 지역에서는 캠핑장 인파나 사진 촬영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아예 번식 자체가 끊긴 사례도 보고됐다.
심지어 해변 가까운 공사장 소음이나 해양 관광지의 야간 조명조차 번식을 방해한다. 야간 조명은 새의 체내 생체리듬을 혼란시키고 소음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어미새가 둥지를 오래 비우게 만든다. 이때 알이나 어린 새끼가 포식자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쇠제비갈매기의 주요 먹이는 멸치, 어린 청어류, 소형 갑각류다. 날면서 바닷속 물고기를 포착하고 수면 위로 급강하해 부리로 낚아챈다. 이런 사냥 방식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번식기에는 어미가 잡은 먹이를 새끼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중 비행과 다이빙을 반복한다.
최근에는 해안 생태계가 오염되거나 연안 어족 자원이 줄어들면서 사냥마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면 아래 먹잇감이 줄면 갈매기들은 멀리까지 비행해야 하고 그만큼 체력 부담도 크다. 번식지와 먹이터의 거리까지 멀어지면 먹이를 제때 공급하지 못해 새끼가 굶어 죽는 상황도 벌어진다.
서식지 파괴도 심각하다. 항만이나 제방 개발, 도로 건설, 해안관광지 조성은 갯벌과 모래밭을 점점 좁게 만든다. 그 결과 쇠제비갈매기가 선택할 수 있는 번식지가 줄어들고 있다. 과거 자주 둥지를 틀던 지역이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이거나 유원지로 바뀌는 일이 많아졌다. 새로운 둥지 후보지를 찾기 어렵고, 기존 서식지도 안정적이지 않다. 불안한 서식 환경에서는 번식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이탈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쇠제비갈매기의 생존은 결국 사람과의 거리에서 시작된다. 번식지 인근에서 무심코 남긴 발자국, 드론 한 번의 비행, 반려동물의 짧은 산책조차 둥지를 포기하게 만든다. 새를 발견하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이 새들을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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