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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서울 출생인 권혁순은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 군악대에 복무하며 트럼펫 연주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악기 연주가로는 드물게 1966년 해군 군악대 대장 출신 이교숙 서울대 교수로부터 작곡과 편곡을 사사 받았고, 1967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에서 작품명 ‘들국화’로 신인 작곡상(연예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권혁순은 당시 길옥윤, 이봉조 등 대표적인 마스터들과 밴드를 구성해 악단장이자 트럼펫 연주가로 이름을 알렸다.
1967년 철도국 악단 입단 이후 동양방송(TBC), 이봉조악단을 거쳐 KBS 경음악단 총무 등을 역임한 권혁순은 ‘코미디 출동’, ‘전우’, ‘토지’, ‘전설의 고향’ 등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주제가를 작곡·편곡했다. 특히 ‘가요무대’ 등을 연출했던 안인기 PD는 “이번 세기에 찾기 힘든 음악 파트너”라고 극찬할 정도로 실력있는 음악인으로 손꼽혔다.
1982년에는 최무룡 감독 영화사인 삼전주식회사 음악부장을 역임했고, 영화 ‘이한몸 돌이 되어’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권혁순은 잠실 주경기장에서 진행된 88서울올림픽 오프닝쇼에서 트럼펫을 연주해 국격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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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부터 10년 간 뮤지컬 ‘명성황후’의 편곡자로 활동했고, 뉴욕 공연에도 초청받아 자리를 빛냈다.
1997년에는 교통방송 악단장을 역임했고, 한서대학교 실용음악과 음악편곡 강의에 나서는 등 교육자로도 명성을 높였다.
권혁순의 음악 열정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식지 않았다. 60대에는 컴퓨터로 음악 작업을 하는 등 배움을 놓지 않았고, 70대에 이르러서는 파라다이스 그룹 전필립 회장의 후원으로 교회오케스트라 창단 및 음악 작곡, 편곡 등으로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특히 10대, 20대 젊은이에게 무료로 악기를 교습해주는 등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고인의 음악 열정은 많은 이에게 전파됐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2004년 뮤지컬 ‘명성황후’ 10주년 감사패를 비롯해 △2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편곡상 △한국영화총연합회 유공영화인상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악단상 등 다수를 수상했다. 특히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권혁순은 총 89건의 저작물을 보유할 정도로 창작 활동도 왕성했다.
권혁순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동료 음악인들이 함께해 자리를 빛냈다. 권혁순의 빈소에는 재즈피아니스트 신관웅 등 선후배 음악인들이 조문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했다. 특히 세계적인 트럼펫 연주가 최선배는 빈소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며 명복을 빌어 영원한 연주가로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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