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한때 내 전부였던 것들을 잊으려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잊고 난 후에 무엇이 찾아올지 알고 싶어서 쓰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시간을 온통 글을 쓰는 데 쓰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무엇과 맞닥뜨리고 싶다. 이 글은 바로 그때 끝날 것이다. 나는 내심 그때를 기대한다.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는 알맞은 때를 기다린다."
유진목 시인의 산문집이다. 마치 아니 에르노를 연상 시키는 깊고 절절한 자기 고백글을 읽었다. 자신을 드러내 놓고, 월세를 내야 하는 한 달 한 달의 삶을 말이다. 하루종일 혼자 읽고 쓰는 일에 대하여 말이다. 얼마나 고독한 직업인가.
그러나 그렇게 글을 쓰기 위해 사는 자신의 삶을 날 것으로 드러내면서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죽음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에 당도하고자 이렇게 사는 지금의 역사를 피력하고는 있지만, 겁나지 않은 죽음을 밑에 깔아두고 있는 삶이다. 그렇게 된 데는 당연히 가족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것도 열 살 어린애를 두고 교회에 가있던 엄마와 지금의 죄책감 이야기는 너무 안쓰럽다.
그것이 삶의 근본 적인 질문이고, 그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실현하는 분투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살기로 작정하는 일은 얼마나 용감한가. 이만큼 끌어온 것은 더더욱. 산문집의 말미에서 자신의 재능은 결국 '불행'이라고 규정한다. 어쩌면 현재진행형 인생을 그대로 드러내고 쓴 글이기에, 그의 인생 다음 페이지에서 어떤 글이 이어져 나올지도 궁금하다. 그의 문장들을 사랑했던 기억이 있는 나는 이번 글을 더욱 아껴가며 읽었다.
'정신은 남이 만든 것을 좋은 것을 보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덕분에 내가 찾아 헤매는 '남이 만든 좋은 것들'에 대해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나도 내가 쓸 수 있기 위해서 계속 하는 일이다. 날씨가 내러티브가 되는 삶, 이것도 저것도 없는 삶에서 건져낸 위로조차 처연한 글이다.
또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치닫는 불행과 글쓰기의 토로가 상승하는 점진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 했고, 묘사는 시를 읽은 것 같았다. 내용을 넘어서 짧고 명료한 문장으로 탁탁 박히는 리듬감과 시간과 글쓰기, 사랑을 비유하는 문단들은 여러번 읽을수록 더 좋았다. 깊은 사랑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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