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지은 기자] 시청률 전쟁 속 드라마는 더 화려해지고,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상상력 및 허구에 기반을 둔 예술 작품일지라도 절대로 놓쳐선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역사’, 그러나 연이어 벌어지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문화재 훼손’, ‘역사 왜곡’ 사례는 그 기본조차 무시당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드라마는 시대를 기록하는 예술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과거를 재현하며 정작 과거에 대한 존중은 결여되어 있는가. 호국보훈의 달,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는 이 시점에, 드라마계는 과연 그 정신에 부응하고 있는가 되짚어 본다.
역사는 단지 콘텐츠의 배경이 아니라, 자산이다. 극적인 화면을 위해 유산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제작 시스템은 분명 재고되어야 한다. 이는 제작사, 방송사, 심지어 일부 행정기관까지 묵인하거나 안일하게 관리하면서 만든 구조적인 허점이다. 촬영 허가만 받으면 다 된다는 식의 관행, 문화재 관리 측의 소극적인 대응. 매번 사과문이 붙고, 관계자가 교체되며,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문장이 자동완성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똑같다. 다음 작품에서 또 다시 누군가 ‘허가 받았다고 착각한’ 손으로 우리의 역사를 망가뜨린다.
6월 11일 공개되는 KBS 2TV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은 촬영에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문화재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경북 안동의 문화재인 병산서원에서 촬영을 하던 중 제작진이 목조건물에 못을 박아 소품을 단 것.
당시 목격자인 민서홍 건축가는 개인 채널에 “황당한 상황을 목격했다. 서원 내부 여기저기에 드라마 소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몇몇 스태프들이 등을 달기 위해 나무 기둥에 못을 박고 있었다”며 “스태프들에게 항의했더니 ‘안동시의 허가를 받았다’. ‘궁금하시면 시청에 문의하면 되지 않냐’며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기 시작했다”고 폭로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KBS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병산서원 관계자들과 현장 확인을 하고 복구를 위한 절차를 협의 중에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소품팀 3명은 문화재유산법 제92조(손상 또는 은닉 등의 죄)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에 KBS는 병산서원 촬영분을 전량 폐기하기로 결정, 경남 하동에서 재촬영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안동시의 촬영 허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소품을 달기 위해 국가유산에 못을 박는 것은 엄연히 허가 범위 밖의 행위다.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작품도 있다. 2020년 방영된 tvN 드라마 ‘철인왕후’는 불의의 사고로 대한민국 대표 허세남 영혼이 깃들어 저 세상 텐션을 갖게 된 중전 김소용과 두 얼굴의 임금 철종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혼가출 스캔들 드라마로 닐슨코리아 최고시청률 17.4%를 기록하며 상위권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극 중 신정왕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국보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철인왕후’ 제작진은 OTT 등 다시보기 버전에 논란이 불거진 대사를 삭제했다. tvN ‘슈룹’ 역시 극 중 사자성어 ‘물귀원주’가 중국식 간체자로 쓰인데다 ‘본궁’ 등의 표현으로 중국풍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JTBC 드라마 ‘설강화’는 1987년을 배경으로 하면서 간첩 미화, 민주화 운동 가치 훼손 등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안기부 직원이 집안을 수색하다 항의를 받는 장면, 내부 직원이 상사에게 항의하며 일부 인물을 ‘대쪽같은’ 설정으로 그렸다는 점, 안기부 직원이 북한 측 인물과 만나 몸싸움을 벌이고 비난을 듣는 등 극 중 안기부 인물을 당시 분위기와 맞지 않게 설정했다는 것.
이에 대해 JTBC는 “방송 드라마 특성상 한 번에 모든 서사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초반 전개에서(역사왜곡 및 민주화운동 폄하, 군부미화과 관련한)오해가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종영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드라마 전반에 걸쳐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를 희화적으로 묘사해 안기부를 미화하거나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상업 콘텐츠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룰 때, 아무리 멜로와 액션이 중심이라 해도, 그 바탕이 되는 역사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우리의 역사와 유산을 존중하지 않는 콘텐츠에, 과연 어떤 진정성이 깃들 수 있는가.
이지은 기자 lje@tvreport.co.kr / 사진= tvN ‘철인왕후’, KBS 2TV ‘남주의 첫날밤’, JTBC ‘설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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