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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물에게는 치명상처럼 보이는 외상에도 거북은 살아납니다.” 알렉시아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장이 빠져나와 길바닥에 뭉개진 것만 아니라면 살려낼 수 있어요. 거북 앞에서 포기란 없습니다.” <12쪽>
최근 288세로 세상을 떠난 한 거북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태어난 순간에도, 양초로 집 안의 불을 밝히던 시절에도, 관장과 방혈이 의사의 주요 치료법이던 시기에도, 정신질환 환자에게 말코손바닥사슴의 굽을 갈아서 먹이던 때에도 살아 있었다. 어떤 거북은 140세에 새끼를 낳는다. 1.6킬로미터 떨어진 호수나 연못을 감지하는 거북도 있고, 수십 년 전 자신이 태어났던 해변을 찾아가기 위해 대양을 가로지르는 거북도 있다. <25쪽>
성인이 된 이후 이때까지와의 삶과는 다르게 지혜로운 삶이라는, 어쩌면 도덕적으로 더 설득력 있는 목표를 추구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지혜의 길을 보여주고 시간과 사이좋게 지낼 방법을 알려줄 스승으로 삼기에, 서둘지 않고 장수하며 고요와 끈기의 상징으로 존경받는 이 태곳적 동물보다 나은 선택이 있을까? <37쪽>
거북은 인내심이 뛰어나다. 크리스도 그렇다. 거북들은 화산 폭발, 빙하기,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심지어 소행성 충돌을 포함한 수많은 난관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나는 거북의 조상이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침착을 유지하며 모든 상황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상상을 한다. 크리스가 숲에서 자신을 쫓던 경찰과 경찰견을, 그리고 자신이 불을 지른 학교가 타는 장면을 지켜보던 때처럼. 그는 삶이란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신비하고 즐거울 수도 있음을 일찌감치 깨쳤다. <61쪽>
인간 세계에서 그러한 집중은 몹시 드물다. 오늘날 현대인의 관심은 조각나 있고 집중력 또한 분산되어 있다. 영국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깨어 있는 동안 평균 12분에 한 번씩 하던 일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63쪽>
너태샤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 입원한 거북의 상자나 수조에 손을 넣을 때는 옆에서 다른 사람이 어느 쪽이 거북의 머리이고 꼬리인지 알려줘야 한다. “한번은 알렉시아가 깜빡 잊고 저한테 커다란 붉은귀거북을 머리 쪽으로 건네준 적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대번에 콱! 하고 물더라고요.” <82쪽>
5월 28일은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었다는 발표로 시작되었다. 다음 날 맷과 나는 34번 거북이 지난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팬데믹 세상에서 죽음을 세는 것은 곧 시간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아니었다면 시간의 화살이 공중에 멈추어서 꼼짝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103쪽>
“그들의 작은 뇌는 수억 년의 역사 속에서 프로그래밍되었어요. 저들은 토양학자, 식물학자, 수문학자 못지않게 지식이 풍부하고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만큼 이 땅에서 오래 살아왔으니까요.” <136쪽>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나란히 존재한다. 주간고속도로의 차들처럼 광란에 휩싸인 채 내달리다 순식간에 강탈당한 시간, 그리고 계절의 순환처럼 영원히 반복되며 갱신되는 시간. 거북은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들의 뒤를 쫓아 고속도로 가드레일 바깥의 세계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야생의 품으로, 자연의 뛰는 가슴으로 들어가 시간의 함정에서 벗어났다. <140~141쪽>
산족은 다르다. 그들에게 ‘나이 듦’은 곧 영광이다. 그들의 언어로 ‘늙음’을 나타내는 말인 n!a는 신을 지칭할 때 쓰이며, 존경을 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에서는 노년에 이른 사람은 상을 받는다. 삶을 쇠하는 것이 아닌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코끼리와 범고래, 기타 여러 동물들처럼 산족은 나이 든 이들이 보물상자와도 같은 이야기와 지혜를 지니고 있음을 안다. <192쪽>
6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나는 거북을 통해 시간이란 선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시간은 화살이 아닐 것이다.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치명적인 무기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시간은 화살이 아닌 알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북의 알로 만들자. 매 끝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약속을 지켜나가며.
『거북의 시간』
사이 몽고메리 지음 | 조은영 옮김 | 돌고래 펴냄 | 412쪽 | 20,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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