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오래 걸렸다. K리그 최고 유망주, 나아가 대한민국 또래 최고 유망주로 꼽혔던 게 19세 때다. 이제 전진우는 26세가 됐다. K리그 8년차 전진우는 마침내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적당히 잘 하는 선수가 아니라 ‘K리그 최고 스타’가 될 거라는 기대다. 최근 K리그1 득점 선두를 달리며 생애 첫 A대표 발탁을 이뤘으니 리그 최고라고 불러도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진우가 생애 첫 A대표 멤버로 뽑히고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부상을 입고도 환상적인 골을 터뜨리기 며칠 전, 전북현대 클럽하우스에서 그를 만났다. 전진우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시간만큼 마음고생도 했지만 이젠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 아무런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그저 매 경기에 충실할 뿐
전진우는 K리그1 16라운드까지 11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정팀 수원삼성에서 약 4년 반, 상무에서 약 2년 뛰면서 전진우의 시즌 최다득점은 2022년 기록한 6골 3도움이었다. 전진우는 득점왕이라는 목표를 세운 적이 없다. 그런데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지금도 목표를 상향조정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심지어 프로 선수 대부분이 내놓는 모범답안 ‘팀의 우승’조차 본인 입으로 거론하지 않으려 했다.
“큰 목표를 정해놓고 바라보지 않으려 해요. 매 경기가 그 자체로 제일 큰 목표거든요. 그러다 보면 팀의 승리를 따낼 수 있고, 제 득점도 따라오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제가 골 넣고 이기면 더 좋은 일이지만 다른 선수가 넣더라도 춤추고 놀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동안 축구를 해보니까 골을 넣어야겠다고 욕심 낸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플레이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나오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성적과 기록에 대한 욕심은 다 버렸다고 하지만, 전진우가 유일하게 남겨 둔 욕심은 경기 내용이다.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못한다. 최근에도 골을 터뜨리고 이긴 날 영상을 돌려보면 아쉬웠던 플레이만 눈에 띈다. 지인들이 득점에 대해 축하한다고 연락을 해 와도 아쉽다는 대답만 해서, ‘다른 사람들은 넣고 싶어도 못 넣는게 골이다. 좀 즐겨라’라는 핀잔이 돌아오기도 한다.
“전북에서 훌륭한 선수들과 뛰게 되면서 힘을 써야 할 곳과 해야 할 플레이에 대해 생각을 좁힐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플레이가 더 심플해지고, 파괴력이 높아졌죠. 상대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힘을 쓰니까 찬스가 많이 나오고 마무리할 때 집중력도 높아졌어요. 감독님께서 모든 선수들에게 수비 가담을 주문하시는데 저도 수비와 빌드업을 도와주러 내려가되 힘을 많이 쓰진 않아요. 빌드업이 잘 되면 전방에서 침투와 마무리에 신경을 더 쓰려고 하죠.”
거스 포옛 감독은 전북에 신묘한 전술을 도입한 건 아니지만, 개인능력 좋은 선수들의 원래 기량을 이끌어내고 공수 균형을 찾아냈다. 전진우는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힌다. 포옛 감독은 수비할 때 상대 선수를 끝까지 따라갈 것, 공격할 때 과감한 마무리를 주문했다. 어떤 플레이든 망설이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하라는 주문이다. 한동안 전진우가 잃어버렸던 마음가짐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이제와서 느끼는 건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해야 할 플레이가 더 간단해졌고, 주변에서도 서포트를 많이 해 주시면서 마음 편하게 플레이합니다. 지금은 진짜 빼앗기거나 실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데. 옛날에는 욕을 많이 먹다 보니까 해야 될 때 주저하게 되고 망설이는 부분도 없지 않았어요.”
해야 할 플레이가 간단해지면서 부담감을 내려놓으면, 그 다음 단계는 판단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한때 전진우는 다재다능하지만 해야 하는 플레이를 헷갈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럴 때 전진우의 팬들이 아쉬워하며 쓰던 표현이 ‘땅 보며 드리블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시야가 넓어졌다. 역시 조급한 마음을 버린 덕분이다. 이제 전진우는 다시 욕을 먹는 날이 오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안정감이라기보다는, 네, 안정감이 맞네요. 제가 메시나 호날두가 아니잖아요. 당연히 모든 경기를 잘 할 수는 없죠. 더 높은 수준에 갈 수록 관심을 많이 받을 거고 욕을 먹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옛날처럼 조급해하고 쫓기진 않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 속에서 보낸 전진우의 20대 초반이 한층 성숙한 그의 20대 중반으로 가는 성장통이었던 셈이다.
▲ 감독이 날 믿어주면, 나는 보답한다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득점 감각이다. 전반적인 플레이의 자신감이 향상됐다 해도, 문전에서 남다른 침착함을 장착한 건 별개다. 전진우의 골에는 특정 패턴도 없다. 다이빙하는 골키퍼 위로 톡 찍어 차는 슛부터 시작해 왼발 감아차기, 드리블 후 마무리, 헤딩슛, 문전에서 주워 먹기 등 한 가지 종류로 설명할 수 없는 골들이 다양하게 쏟아진다. 그때마다 라민 야말, 에덴 아자르 등 다양한 해외 스타들이 돌아가면서 소환된다.
“제일 확실한 이유는 이것 같아요. 보통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경기에서 빼잖아요. 감독님께서 계속 믿어주시고 끝까지 뛰게 해 주시는 게 정말 마지막에 골을 넣을 수 있게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믿음을 주고 기회를 주시는데 당연히 선수는 보답을 해야죠. 그래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오늘 경기력이 안 좋아도 최선을 다해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뛰어요.”
포옛 감독은 대외적인 발언을 줄이고 내부에 집중하는 편이다. 감독 교체의 최대 수혜자라 할 만한 전진우에게 지도 스타일에 대해 물었다. 전진우는 그들만의 대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진 않았다. 대신 훈련의 변화는 생겼다고 했다. 체력훈련이 프리 시즌에도 엄청났고, 시즌 중에도 여전히 이어진다는 점이다.
“개인훈련을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아요. 훈련량은 팀에서 다 컨트롤 해주시니까. 올해 좀 달라진 부분은 시즌 중에도 체력 운동 같은 느낌의 운동을 해요. 강도를 확 올리는 날이 있다는 거죠. 힘들지만 정확히 데이터에 맞춰서 경기 며칠 전에는 얼마나 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시기 때문에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경기장에서는 몸도 잘 나가고 가벼운 걸 보면 그런 운동들이 확실히 효과가 있구나 싶어요. 프리 시즌도 제가 겪은 것 중 가장 힘들었고요.”
▲ 강상윤, 송민규와 환상적인 조합
전진우와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을 맞추는 선수를 꼽는다면 함께 스리톱을 구성하는 송민규, 콤파뇨, 그리고 미드필더 중 우중간에서 주로 뛰는 강상윤이다. 전진우는 강상윤에 대해 “지금 완성됐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는 선수인데 여전히 어리다. 국가대표는 당연히 갈 수 있다”고 극찬했다. 강상윤의 활동량과 지능이 전진우 자신에게 가해지는 집중마크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시너지 효과를 설명했다. 강상윤 덕분에 전진우가 압박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전진우에게 수비가 끌려 나가면 강상윤이 그 공간을 쓰기도 한다. 앞서 인터뷰한 강상윤은 “평소 진우 형에게 내 덕분에 꿀 빤다고 말하는데, 그건 농담이라고 전해달라”며 웃었다.
“송민규요? 민규는 한국에서 같이 뛰어 본 선수 중 제일 뛰어나다고 느껴요. 부족한 게 없고 모든 게 완벽한 선수라 같이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할 정도죠. 팬들이 보시기에도 잘 한다고 보이겠지만 같이 뛰어보면 더 잘 알거든요. 민규는 같이 뛰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편하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개인능력도 좋고. 제가 언제 어디로 뛰어도 민규가 패스를 잘 넣어주고, 개인적으로 생활할 때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고, 경기장에서 요즘은 눈빛만 봐도 잘 맞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공격 포인트는 제가 많지만 마무리만 한 거고, 기여도는 민규가 더 큰 것 같아요.”
전진우는 한 명 더 꼽아달라는 말에 홍정호, 김태현, 김진규 사이에서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결국 홍정호를 골랐다. 36세 센터백 홍정호가 선발 라인업에 합류하면서 전북의 후방은 냉정해졌다. 전진우는 상대가 운이 좋거나 너무 기막히게 때린 슛이 아니라면 실점하지 않는다며 수비진에 큰 신뢰를 보냈다. 홍정호가 베테랑답게 후배들을 정신차리게 해 주는 임무도 잘 수행한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안일한 플레이를 하거나 ‘나는 괜찮겠지’ 싶은 플레이를 보이면, 저도 그렇고요, 정호 형이 바로 소리 지르고 화내서 깨워주죠.”
“제일 붙어서 지내는 건 (이)승우 형인데. 승우 형이 분위기 올리는 행동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쳐요. 솔직히 승우 형이 경기를 많이 못 뛰어서 마음이 많이 힘들 수 있는데도 절대 티 안 내고 분위기를 주도해주니까 나도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해야겠다고 많이 배워요.”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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