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칼럼] ‘인간은 왜 기념과 잔치를 만드는가?’ 이 물음은 유정의 작업에서 새 세계관이 될 수 있을까?에 이어
[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유튜브에 떠돌아 다니는 쇼츠를 하나 보았다. 정형돈이 홍석천을 보며 말했다.
“나는 내 삶에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당신처럼 싸워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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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결혼하기 좋은 때가 된 것인지, 유독 여러 모임에 불려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청모’(청첩장을 주며 한끼 대접하는 자리라고 한다)에 다녀왔는데 지난 지인의 결혼식이 생각났다.
그 때 물었었다.
“인간은 왜 기념과 잔치를 만드는가?”
중간에 직장으로 빠지느라 청모 자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잊고 있다가, 오늘 쇼츠를 보며 생각을 이었다.
“자신의 삶에 가치있는 것을 내보이기 위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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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며 내가 뭐라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인양 작가님-하고 대접받다 오면 착각하기 쉽다. 그림 그리는 것이 내 삶의 가치 그 자체라고.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러한지’ 구분해 보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유정, 당신은 어떠하냐 묻는다면.
하나. 그리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시기를 서서히 거쳐 온 것 같다. 처음 붓을 잡았을 때는 마음 기댈 곳 절실했기에 먹을 갈고 붓을 들어 한지에 칠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다. 문인화라는 것에 필요한 기본 기술을 배우는 내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랬던 것 같다. 그저 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남들이 쉽게 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에 우쭐했던 점도 있어 더 그럴듯하게 하는척 하는 날도 많았다.
둘. 그 시간이, 그러기를. 십 년 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때 물었다.
“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 배워온 기술들은 쓰고 싶지 않을 만큼 넌더리가 났지만, 그림은 그리고 싶어. 무언가를 그려내야 할 것 같아. 그것이 무엇이지?”
셋. 화실도, 직장도 그만두고 닥치는 대로 전시에 참여했다. 한 달에 한두 개씩 이년여 동안 무리하게 잡아놓은 전시 일정에 매회 새로운 시도를 걸어놓으며 생각했다.
“내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기법, 재료가 무엇이지?”
넷. 그러기를 또 조금. 요즈음 요 근래 묻고 있다.
“그림은 수단이다. 내가 관심 있게 보는 장면을 전달하기 위해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내 방식의 수단은 마련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가?”
“무엇이 조금 더 흥미롭고, 무엇이 조금 더 가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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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내게 묻는 질문은 지금껏 여러가지 그랬듯, 천천히 혹은 어느날 갑자기 풀릴 실타래처럼 내 손에 쥐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래와 같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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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표. 인상깊었던 점) 청모의 주인공, 그의 표정을 본 소감은 하나였다. 마치 희대의 난제를 풀어낸 어느 수학자의 기쁨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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