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버스 맨 뒷자리로 걸어갔다. 의자에 앉아 땅에 발이 닿지 않는 아이가 바로 앞자리에 엄마와 함께 앉았다. 맨 뒷자리가 약간 높은 탓에 살짝만 고개를 내려도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빛이 가득한 세상에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창문에 착 붙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맨 뒷자리에 앉은 어른도 좋아하는 순간이다.
40년간 작업을 해온 작가님과 간단히 산책을 하는 도중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갔던 불교 캠프와 거기서 본 반딧불이 이야기에 작가님은 내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이라고 했다. 분명 특별하지 않던 나의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갑자기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된 것일까? 우리는 각자 어디서 어떻게 자라 온 것일까?
기억 속 어린 시절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가끔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동생보다 조금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기억과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딱히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몇 개의 바로 어제처럼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화장실의 어둠 속에서 그토록 밝았던 칫솔 살균기의 파란 불빛,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슬쩍슬쩍 보이던 벽지 무늬의 반복, 수건 하나로 몸을 돌돌 말 수 있던 시절 샤워하고 나와 가까이서 몸을 말리던 가스난로의 불.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나와 광경 사이의 거리가 지금의 나를 꽤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이리저리 뒤져보아도 어린 시절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화가’라는 노래를 피아노로 치며 악보 상단에 그려진 빨간 빵모자를 쓴 화가 아저씨가 언덕 위에서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좋아 보여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떠올려보니 항상 한의사나 과학자 등 수입이 좋은 직업이나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시절의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행복한 삶이었다.
어린 나는 행복한 삶은 선택하는 삶이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갖고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는 성적을 잘 받아놓아야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 언젠가 하고 싶은 것에 확신이 생긴다면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확보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시라는 바늘이 뾰족해질수록 그림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 삐죽 튀어나왔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는 그림을 그렸다. 미술학원을 가본 적은 없었기에 인터넷에서 보이는 많은 일러스트를 보며 에이포 한 장을 가득 채우는 그림을 100장이고 200장이고 그렸다.
정말 어느 날 혼자 그림을 그리던 내가 미술학원으로 바뀌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현대미술 또는 개념미술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문을 하나 열었고 그 문을 지났다. 의도와 선택으로 이뤄진 작품과 그것이 가진 이야기는 어떤 문을 지난, 가장 처음의 나를 사로잡았다. 비록 지금은 그 감각을 잃어버렸지만 그때의 그 뜨거워진 볼을 부끄러워하던 기억은 남아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스스로 선택한 이 길을 내가 쭉 가는 것,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놓는 것처럼 자라온 대로 커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이상할 것 없는 삶이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