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문장을 좋아한다. 고르고 고른 낱말들이 집합된 문장더미가 엮인 책도 좋아한다. 그렇다고 책을 그리는건 재미가 없어서 남들이 그린 책가도를 종종 보고 오곤 한다.
위 사진은 두고두고 보고 싶어 받아왔던 도록의 한 페이지다. 무성한 초록과 즐겨하는 류의 조명이 다시 봐도 좋은 책가도. 보통 민화에서 책을 그린다면 이런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책장 칸마다 작가 개인의 물건들을 넣어 놓는.
류민정 작가의 책그림엔 책이 빼곡하다. 마치 쌓고 쌓은 삶이라는 책더미를 부분확대해 놓은 모양새라 더 집중된다. 저들 중 가장 손때가 탄 페이지는 어디일까 궁금하게 하는.
그는 “책이 애닳다”로 노트를 시작한다.
“(중략) 이 작품은 바로 그 ‘남겨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불꽃이 스쳐간 자리에 남은 잔상처럼 우리의 삶과 사유도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리라 믿는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휘발성과 영속성, 파괴와 보존. 이 모순된 요소들이 공존하는 우리 시대의 복잡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민화의 형식이고 책을 그렸지만 그의 노트를 읽고 나면 책가도라는 작업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보다는 사라지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남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진열한게 아닐까. 한 권 한 권이 누군가가 진중히 보냈을 장면같아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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