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사람의 그림 이야기 - 무엇을, 베로나에서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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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람의 그림 이야기 - 무엇을, 베로나에서②

문화매거진 2025-05-30 00:09:47 신고

어떤 한 사람의 그림 이야기 - 여행자, 베로나에서①에 이어 
 

▲ 방 한켠에서 기록한 흔적 / 사진: 김태이 제공
▲ 방 한켠에서 기록한 흔적 / 사진: 김태이 제공


[문화매거진=김태이 작가] 로마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베로나에서의 하룻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압박감으로 잠을 설쳤다. 나를 옥죄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계획을 계획했던 것이지만 무계획이라는 것 자체도 나를 이런 감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개운하지 못한 며칠을 히키코모리처럼 보냈다. 머나먼 타국이라고 해서 무기력이 면제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도시, 낯선 언어와 표정들 속에서 그 감각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관광객이자 방관자였고, 세계는 나를 향해 ‘느껴야 하고, 기록해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여행자라는 정체성엔 늘 능동성이 붙는다. 걷고, 먹고, 발견하고, 때로 감동까지 해야만 하는 의무. 그러나 그런 활동들 모두는 나의 의지로부터가 아니라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왔다. 나는 풍경 앞에서조차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허용하지 못했고,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시간은 곧 죄책감으로 번졌다. 그렇게 무기력은 타인의 시선으로 가장한 스스로의 기대 아래 더욱 또렷이 자라났다. 결국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베로나의 햇살은 여전히 찬란했지만, 내 안의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있었다.

인간이 배고픔을 느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감각이 있다면 그것은 허기였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적어도 뭘 먹고 싶은지는 알겠다는 것이 얼마나 구원 같은 일인지. 나는 그 단순한 리듬에 붙들려 일으켜졌다. 만약 내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인간이 아니었다면, 빵과 과자, 커피 같은 것들을 유난히 사랑하는 입맛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이 며칠간 나는 아마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유럽의 거리엔 그런 나를 유혹할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구수하게 내려진 커피, 버터 냄새가 밴 빵, 과일 향이 스며든 타르트, 설탕이 곱게 쌓인 패스츄리…

무엇을 먹고 싶은가.

단순한 빵 한 조각이든, 따뜻한 커피 한 잔이든, 그 어린아이 같은 욕망의 방향은 그 무엇도 속일 수 없는 진심이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가. 무엇을 먹고 싶은가. 나는 어떤 감각을 위해 여전히 나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가. 어떻게 살길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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