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과거에는 그런 말을 종종 했던 것 같다. ‘작업을 하는 시기에는 오히려 다른 전시를 보는 것을 멀리 한다’ 같은 말.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하루에 영화를 여러 개 보면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것처럼 전시도 하루에 여러 개 연달아 보는 것은 힘들다’ 같은 말. 지금 생각해 보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했을까 싶다.
요즘은 전시 보는 날을 아예 ‘오프’처럼 생각하고 가벼운 짐만 챙겨 룰루랄라 집을 나선다. 보고 싶은 전시가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동선을 맞춰 하루에 많게는 8개의 전시를 관람하기도 한다. 많은 전시를 보는 것은 분명 나의 작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겠지만 작업적인 리서치보다 관객이 되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한다. 많지는 않지만 전시를 해보니 전시장에 오는 이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절감하게 되었고 최대한 일정이 가능하다면 많은 전시장에 가려고 노력한다.
무턱대고 여러 전시를 가던 와중 잊고 있던 질문이 생각났다. 전시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 계속 꺼내 보고, 이런저런 답을 쓰다 보니 닳고 닳은 질문이 되었다. 아름다운 전시와 작가의 재미있는 생각에 덮쳐 너덜너덜한 그 질문지를 잠시 잊고 있었다. 작가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한 그 질문지를 영원히 떨쳐 버릴 수는 없겠지만, 작가가 아닌 다른 시각에서 질문지를 바라본다면 조금 더 쉬운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다.
여러 전시를 많이 방문하고 방명록에 내 손으로 내 이름 석자를 쓰고, 인스타그램에 전시장과 작품 이미지를 올리다 보면 전시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지금의 나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아주 단순한 답을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몇 달 또는 약 일 년의 작업과 동고동락 한 시간을 상상해 본다. 작가로서 그 시간을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보다 관람객으로서 그 시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먼저 깨닫는 것. 그것이 가능할까.
오늘 전시장에서 지킴이를 하는 작가님을 만났다. 작가님에게 작업 설명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전시장에 있는 작업 하나가 뚝딱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크지 않은 전시장의 곳곳을 채운 작업과 조용한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작가를 보며 새삼스럽게 단순하게는 마주하지 못할 세상의 다양한 면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작업 하나에 들인 시간과 생각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 그 마음을 전시장에서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며 전시를 본 적이 있나?
바람처럼 스치듯이 많은 생각들을 하며 지하에 위치한 전시장을 올라 나왔고 날이 좋았다. 작업실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 전시장이라는 곳에서만 반짝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먼 길을 걸어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더 많은 전시장에 가서 더 많은 작업을 본다면 ‘전시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지를 버릴 수 있는 날이 올까. 또는 아주 많은 것들을 보면 너무 많은 것들이 새롭게 쌓이고 쌓여 그 질문지를 가장 아래로 아래로 내려 버리게 될까. 너무 아래로 내려가 버려 죽을 때까지 다시는 마주치지 못하게 가장 아래로 밀려 내려가기만 해도 좋다. 전시를 보며 어느 순간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에서 작품이 아닌 어떠한 공감과 안쓰러운 감정들을 느끼는 게 맞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러한 감정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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