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초여름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5월, 바다 건너 울릉도에서 특별한 생명이 발견됐다. 멸종위기종 슴새가 도심에서 쓰러져 있는 채로 구조된 것이다. 본래 바다와 섬을 삶터로 삼고 사람과는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슴새가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슴새는 본래 무인도나 외딴 섬에서 조용히 살아가며, 사람의 시선에서 멀어져 있는 삶을 택한 새다. 하지만 생존의 공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도시의 외곽까지 떠밀리듯 내려온 모습은 그 자체로 경고처럼 느껴진다.
쓰러진 슴새, 울릉도 주민이 발견해 구조
26일 경북매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23일 저녁 7시쯤, 울릉문화유산지킴이 일행이 도심을 지나던 중 슴새 한 마리가 기력을 잃고 도로 위에 쓰러져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새는 쉽게 날지 못했고 움직임이 둔했다. 구조된 슴새는 곧바로 울릉군청으로 인계됐고, 보호 조치가 이뤄졌다.
슴새는 슴샛과에 속하는 조류로, 몸길이는 약 48cm에 이른다. 흰색의 머리와 목을 중심으로 검은 세로줄 무늬가 나 있고, 갈색 등과 흰 배를 가졌다. 긴 날개와 뾰족하게 휘어진 부리가 특징이며, 파이프 모양의 콧구멍도 슴새만의 모습이다. 이 새는 어류나 두족류를 주로 먹고 산다. 한국, 일본에서 번식하며, 겨울엔 필리핀이나 뉴기니 같은 남쪽 해역에서 보낸다.
울릉도는 과거 슴새의 주요 서식지 중 하나였다. 특히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는 예전부터 깍새섬 혹은 깍개섬이라 불리며, 슴새가 자주 번식하던 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엔 울릉도에서 슴새를 발견하기 어려워졌고, 이번 구조는 매우 뜻깊은 사례로 기록된다.
섬과 바다를 오가는 슴새의 치열한 삶
슴새는 3월이면 남쪽 해역에서 출발해 한국의 섬으로 날아온다. 그리고 10월까지 머무르며 새끼를 키우는 기간을 보낸다. 땅속에 굴을 파서 둥지를 만든 뒤 단 한 개의 알만 낳는다. 암수는 4일 간격으로 교대로 알을 품고, 이 기간 동안 한쪽은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고 다른 한쪽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굴 안에서 알을 품는다.
교대가 늦어지면 상황은 더욱 극심해진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돌아오지 못하면 남은 한쪽은 굴에서 굶주린 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이 시간이 길어져서 알을 끝내 지키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생존을 위한 이 치열한 과정은 번식 성공률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다.
알이 부화하면 부모는 약 3개월간 먹이를 공급하며 새끼를 키운다. 이때는 교대 간격이 더욱 짧아지고, 밤마다 둥지로 돌아와 새끼를 보살핀다. 그렇게 성장한 새끼는 7년가량 바다를 자유롭게 누빈 뒤, 다시 섬으로 돌아와 번식을 시작한다.
이 순환은 자연의 법칙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영향으로 점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서식지 파괴는 물론이고, 슴새가 잠수해 먹이를 찾는 동안 그물에 걸려 희생되는 일이 빈번하다. 알이나 새끼가 들쥐 같은 포식자에게 공격당하면서 번식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00년 무렵 제주 추자면 사수도엔 약 1만5000마리의 슴새가 살았다. 하지만 현재는 5000~6000마리로 줄었다. 해양수산부는 2016년에 슴새를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했다. 허가 없이 포획하거나 유통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그만큼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슴새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슴새’라는 이름은 '섬에서 사는 새'에서 유래했다. 울음소리가 '깍~ 깍~' 거리기도 해 깍새나 꽉새로도 불린다. 멀리서 보면 갈매기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훨씬 더 복잡하고 세심한 생김새를 지녔다. 뾰족하고 휜 부리, 줄무늬가 박힌 머리, 날렵한 몸매까지 어느 하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기품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귀한 생명도 먹이 활동 중 그물에 걸려 희생되거나, 알을 지키지 못해 번식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울릉도 구조 사례는 단순히 한 마리의 구조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인간과 야생 생물 사이의 경계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서식지가 무너지면 자연은 더 이상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번 사건은 한 여름을 앞두고 벌어진,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장면이었다. 바다와 섬을 삶터로 살아가는 생명이 왜 도심에 쓰러져 있었는지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슴새의 여정은 단순한 철새의 이동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연과 공존해야 할지를 다시 묻는 물음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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