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뉴스] 김상진 기자 =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부조리 소설 가운데 하나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체제의 무자비함, 그리고 그 속에서 무력하게 무너져가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독자에게 묵직한 충격과 사유를 남긴다.
이야기는 어느 날 아침, 은행원인 요제프 K가 이유도 모른 채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그는 감옥에 수감되지도 않고, 자신의 일상도 이어가지만, '소송'이라는 미로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그가 마주하는 재판은 논리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그 누구도 명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재판관과 변호사, 서기관, 법정에 얽힌 인물들을 만나지만,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누구에게도 온전히 닿지 않고, 오히려 말할수록 수렁 속으로 빠진다.
카프카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압도적인 디테일로 묘사한다. 법이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불합리한 절차들, 인간의 말을 듣지 않는 기계 같은 조직, 그리고 결국 “죄가 없다”는 사실조차 증명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한 남자의 비극은, 카프카가 꿈꾼 상상 너머로 오늘날의 현실을 겨냥한다.
『소송』이 발표된 것은 1925년, 카프카 사후였다.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었고, 친구 막스 브로트가 원고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미완이라는 한계조차 이 소설의 힘을 가리지 못한다. 오히려 단절적이고 미로 같은 구성은 이 작품의 부조리성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읽는 내내 독자는 질문하게 된다. 요제프 K는 왜 체포되었는가? 그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아니, 죄라는 것은 정말 존재했는가? 하지만 끝까지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은 해답을 주지 않는 대신, 독자 스스로가 이 질문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소송』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맞닥뜨린 거대한 재판에 대한 은유다.
[김상진 기자의 서평talk ]
카프카의 소송은 오늘날까지 유효한 경고다. 정의가 사라진 절차, 말이 통하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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