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II’, 2002, 혼합 재료, 77×118×85 cm. 개인 소장.
‘매스’,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가변 크기.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경이로울 정도로 인간과 유사하지만 실물보다 훨씬 크거나 작은 조각. 그래서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갔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크기를 가늠하는 형상. 이것이 조각가 론 뮤익의 작품이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 공동주최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 <론 뮤익>의 관람객은 하나같이 작품을 근거리에서 들여다보다 천천히 주위를 돌며 형태를 살핀다. 실감 나지만 비현실적인 작품들은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잔물결은 이윽고 실존에 대한 사유로 퍼져 나가며 파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현대 인물 조각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의한 작가로 평가받는 호주 출신 거장 론 뮤익의 이번 서울 전시는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조각 10점과 스튜디오에서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고티에 드블롱드의 사진 및 다큐멘터리 필름이 함께 전시된다. 4월 11일 개막한 이래 19일 만에 누적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작가의 잠든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자화상 ‘마스크 II(2002)’, 침대에 누워 먼 곳을 바라보는 인물을 표현한 ‘침대에서(2005)’와 같이 실제 크기보다 확대한 대형 작품과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 ‘치킨/맨(2019)’, ‘젊은 연인(2013)’ 등 작은 스케일의 작품이 한 전시실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었다. 세밀한 표현법의 비밀은 6전시실 지하에서 엿볼 수 있다. 2005년부터 작가의 스튜디오 풍경을 담은 사진과 영상에서 전시작의 탄생 과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연구사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 키아라 아그라디, 론 뮤익 스튜디오 소속이자 협력 큐레이터 찰리 클라크는 영국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를 대신해 전시장을 살피며 그와 긴밀히 소통했다. 키아라 아그라디는 “론 뮤익은 작업에 전념하느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전시 준비 과정에서 작품 설치는 물론 세심한 부분까지 함께 논의했기에 그의 참여를 관람객이 생생히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찍이 론 뮤익을 지원해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작가 사이에 이번 전시는 앞으로의 행보를 예견하는 중요한 이정표다.
1 ‘유령’, 1998/2014, 혼합 재료, 202×65×99cm. 야게오 재단 컬렉션. 2 ‘치킨/맨’, 2019, 혼합 재료, 86×140×80cm.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왼쪽부터 ‘마스크 II(2002)’,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 ‘침대에서(2005)’가 배치된 전시장 전경.
생과 사의 사유
‘매스(2016-2017)’는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물론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100개의 두개골 형상이 전시 공간마다 상이한 방식으로 설치되는 장소 특정적 작품이기에 매번 새로운 장면을 제시한다. 2017년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의 의뢰로 제작된 이 작품은 이후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밀라노 트리엔날레 등을 통해 소개됐다. 2023년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에서 창 너머 초록 정원과 대비를 이루며 서늘한 감상을 자아냈다면, 서울에서는 층고 14m에 이르는 5전시실의 높이에 주목했다. 찰리 클라크에 따르면 론 뮤익은 파리 지하 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천장까지 쌓인 유골 더미가 쏟아져 내린 장면이 작가의 뇌리에 남았다고. 전시실 높은 곳에 난 창문은 이곳이 지하임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작가는 두개골 조각을 천장까지 쌓고 그것이 무너진 모습을 표현했다. 거대한 두개골 더미는 금방이라도 관객을 덮칠 듯하다.
기자간담회에서 찰리 클라크는 “론 뮤익이 실제 크기보다 크거나 작게 작업하는 이유는 실제 현실과 혼동하지 않으면서 실제가 아닌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다. 많은 관람객과 거대한 두개골에 둘러싸인 채 천장 높은 곳에 난 창을 바라보는 순간을 상상해보라. 비현실적인 장면 속에서 우리의 사유는 일상을 벗어나 삶과 죽음 사이로 흐른다.
‘장 누벨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 전경. ©Jean Nouvel / ADAGP, Paris, 2025. Picture ©Andrea Rossetti
장 누벨과 다시 만나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2005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론 뮤익과 관계를 맺고 지원해왔다. 이처럼 일찍이 다양한 현대 예술 분야와 협력해온 재단은 작년 설립 40주년을 기념하며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2025년 말에는 파리에 새로운 공간을 공개할 예정이다.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 팔레 루아얄 광장의 역사적 건물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으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1855년 건설된 오스만 스타일 건축물로, 처음 호텔로 개관했으나 1863년 백화점, 1978년 상업 시설로 변모했다. 라스파이 대로에 위치한 기존 공간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이번에도 아이디어를 더했는데, 그는 8500㎡ 건물의 역사적 맥락을 보존하는 동시에 파리라는 도시와의 조화를 강조했다.
재단의 새로운 공간을 미리 확인하고 싶다면 베니스 조르지오 치니 재단에서 열리는 전시를 기억해둘 것. 제19회 베니스 국제건축전의 병행 전시인 ‘장 누벨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BY JEAN NOUVEL)’에서 내부 디자인을 처음 공개한다. 대형 단면 모형을 비롯해 프로젝션, 실물 크기 사진, 건축 계획, 프로토타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건물 내부와 디자인 요소를 전시 중이다. 베니스 풍경과 어우러지는 이 전시는 9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전은 7월 13일까지 이어진다.
자료 제공 ©Ron Mueck ©MMCA ©Fondation Cartier / Photographer ©Kiyong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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