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 나태주 시인, 이해인 수녀, 가수 이적…. 수많은 ‘네임드’들의 마음을 이끈, 소문난 베스트셀러 편집자 김성태를 만났다. 서울시 북촌에 위치한 출판사 김영사 사무실에서였다. 인터뷰에 앞서 편집한 책 목록과 기고 칼럼을 깔끔하게 공유해, 기자의 감탄을 부른 그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불안한 눈동자’로 등장했다.
예상과 달리 책 마감이 미뤄져 한두 시간을 빼 인터뷰에 왔다고 했다. 기자의 머리가 아찔해졌다. 스스로를 ‘책과 함께 산다’고 말할 정도로 책에 진심인 그의 심신을 위해 인터뷰를 미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책이 가득한 김영사 서재에 앉자, 흔들리던 그의 동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빠진 자의 눈빛으로. ‘좋아하는’ 책과 저자에 대한 이야기가 흐르자, 그는 마치 애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청년의 눈이 되어갔다. “항상 좋아함에서 출발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한다는 그는, 수많은 명 작가들과 함께 베스트셀러를 빚어왔다. ‘비법’을 엿보려고 질문을 준비했지만, 그의 답은 어렵고도 ‘쉬웠다’. 베스트셀러의 비밀 레시피. 그건 바로 ‘사랑’이었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으로 책을, 그리고 사유를 빚고 나누는 김성태 편집자와의 대화. 책 얘기만 했지만, 책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었다. 이 대화가 당신 삶의 ‘좋아함’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를.
Q.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한 눈동자가 되신 건지요?
책 마감을 하고 있어요. 열중하다 와서 그렇죠. 그리고 편집자는 늘 한 권의 책과 살고 있기도 하지만 여러 권의 책과 살고 있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가끔은 새벽 별을 보게 되기도 해요. (갑자기 웃으며) 그런데 이게 인생 전체에서 좋은 습관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제 인생에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책은 활자화되니 수정 작업에 더 신경 쓰게 되잖아요. 남는 것이기에 더 들여다보죠. 증쇄가 있기는 하지만 오류는 줄여나가야죠.
Q. 그런 섬세함 때문일까요? 최재천 교수, 이해인 수녀, ‘피식대학’의 코미디언들까지. 수많은 명사들이 김 편집자님을 택했어요. 유튜버 밀라논나는 수많은 출간 제의 메일 중 편집자님의 제안서에만 마음이 동했다고까지 말했더군요. 이유가 뭘까요?
아….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았습니다. 이렇게밖에는….
Q. 이렇게 진심 어린 뻔한 대답이….
그래도 ‘정성을 다했다’가 전부예요. 전 제가 좋아하는 저자들. 그리고 그 저자의 사유가 좋고, 그걸 책에 담고 싶어 일해요. 그러니까 제가 일을 하는 심장 안에는 ‘좋아함’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제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좋아함’에서 나온 게 전부라고밖에는.
(골똘히 생각하며) 좋아함에서 출발해 여러 가지 상황이 생겨나죠.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한 사람과 만나고, 그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과정에는 노력과 행동이 깃들어지는….
편집자의 심장에는 ‘좋아함’이 산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생겨나는 일
좋아하는 작가를 위해 강연장에 직접 찾아간다. 수줍게 엽서를 건넨다. 편집한 책과 선물을 상자에 넣어 택배로 전하기도 한다. 물론, 작가에 대한 곡진한 공부가 전제된 편지도 함께. 출간 제안 편지를 언제 쓸 지마저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정한다. “책을 만들고자 결심했다면 봄에 메일을 쓸지, 여름 가을 겨울에 메일을 쓸지”까지 고민하면서. 이는 김 편집자가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서로를 찾는가-좋아하는 저자, 편집자, 독자라는 공동체’, 기획회의 605호)
상대의 마음에 닿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마치 사랑에 빠진 청년 같다. 그것도 제 감정에 취한 게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궁리하는’ 아주 성숙한 애인이 될 것이 예견되는 태도. 그러나 그의 진정한 재능은, 좋아함 그 자체 보다 “좋아함의 지구력”과 “깊이”에 있다. 기획 방향을 확장하는 수많은 만남의 시간, ‘원고를 기다리는’ 기나긴 시간을 넘어, 책 한 권이 탄생한 후에도 저자의 생애 전반을 두고 필요한 ‘또 다른 책’을 함께 고민한다. 한번 작업한 저자들이 또다시 그를 찾는 이유다.
“이 좋아함은 한번
반짝하는 좋아함이 아니에요.
저는 한 권의 책을 함께 작업한 분과
그다음 책을 이어가고픈 마음이 크거든요.
그러려면 서로 간의 신뢰가 있어야 할 텐데
그건 단기간에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책 한 권이 만들어지고 알려지는 과정에서
서로 숨을 나눈 호흡. 함께 있는 동안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알아봐 주는 건 아닐까...”
Q. ‘작가의 전 생애’까지 떠올리며 책을 빚는다니. 저자 입장에서는 감동적일 것 같아요.
전 ‘좋아함에서 출발했을 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한 작가가 어떤 글을 쓰시면 좋을까. 이 시기 이때쯤에는 어떤 고민이 있으실까. 이런 것을 생각하며 작업해요.
Q. 사실, 유명 저자와의 작업은 ‘안정적인’ 선택일 수 있어요.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대중에게 ‘익숙한’ 저자라는 뜻이기도 하죠. 안정감과 익숙함에 어떻게 새로움을 가져오나요?
‘어떻게 새로움을 끌어내는’지는 작가님 안에 답이 있죠. 제가 새로운 걸 꺼내 출간 제안을 드린다는 건, (이미) 작가님 안에 있는 걸 발굴한다는 뜻이니까요. 또 한 사람 안에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어요. 유명 작가도 신진 작가도 그 고유한 이야기가 있는 분에게 매력을 느껴요. 여러 권의 책을 쓴 분이면 그간 쓰지 않았던 주제를 고민하죠. 책을 전문적으로 쓰는 분이 아닐 경우, 인생 전체를 함축하는 내용을 고민하고요.
무엇보다… 그 안에 ‘끊임없는 대화’가 있어요. (목소리가 커지며) 정말 끊임없는 대화죠. 출간 제안을 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죠. 어떤 때는 밥을 먹으면서. 차를 마시고, 가볍게 나들이 가면서 일상과 고민, 생각을 같이 나눠요. 이 과정에는 제가 제안한 내용도 있지만, 저자께서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이야기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요. 돌이켜보면, 출간 제안서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네요.
Q. 같은 맥락에서 궁금한 게 더 있어요. 이렇게 이름 있는 저자들과 주로 책을 만들어온 건 출판사 김영사의 기획적 스타일의 반영이었을까요, 아니면 편집자님의 스타일이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에요. (웃음) 그런데 분리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다만, 회사에서 기획의 가능성을 열어주시고 존중을 해 주신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요, 어떤 저자와 작업을 한다는 거는 개인적인 발로에서 시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냥 유명해서 작업 하는 것’과 ‘내가 좋아해 작업을 하는 것’은 너무 다른 형태의 결과물이 나올 거예요. ‘마음이 담겨 있는가 있지 않은가. 이 책을 단순한 상품으로 바라보는가 작품으로 바라보는가’ 여기에 따라서 결과물은 달라질 거고, 그 책을 만드는 작업의 내용 또한 달라지겠죠. 그래서 ‘좋아함’이라는 얘기를 저는 계속 꺼내게 되는 것 같아요.
Q. 시대적으로 공감되는 메시지가 담기는 것도 인문교양서로서 편집자님 책의 특징이죠? ‘토론’이 아닌, 『숙론』(최재천). 단순한 위로 힐링서도, 열일을 강요하는 자기계발서도 아닌 『힘과 쉼』(백영옥)…. 이런 시대적인 주제는 어떻게 잡나요?
글쎄요, 한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작가님께서 이미 가지고 계셔요. 저는 그걸 옆에서 잘 공 글리려고 노력한 정도죠. 그런데 전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봐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과 세상’이라는 키워드는 늘 있죠.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이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10년, 20년 후에도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Q. 편집자님은 한 저자의 책을 마무리하고, 두 번째 책을 내기도 하잖아요. 두 번째 책을 작업할 때, 그사이에는 어떤 시간과 대화가 있나요? 간간히 안부를 묻는 형식일까요?
안부를 드리는 건 맞아요. 그런데, ‘책을 만들기 위한’ 안부가 아니에요. 사람 된 도리이기도 하고…. 이를테면, 한 권의 책을 만들던 추억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연락하게 돼요. 어느 날은 바닷가를 걷다가 책 속의 장면이 생각 나 작가님께 문자를 드렸어요. 또 달을 좋아하는 작가님이 계셨는데, 어떤 날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어 연락했죠. 이게 다 섞여 있어요. 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책’으로 만나는 거잖아요. 책을 만들기 위한 연락은 아니에요.
Q. 달이 떴다고 연락을 주시다니! 아까부터 느꼈어요. 책을 빚는 과정이 ‘연애’ 같아요.
(웃으면서) 그 얘기를 많이들 하세요. 징그럽다는 분도 계시고…. (좌중 웃음) 느끼하게 여겨질까 걱정돼요. 그런데 전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서.
Q. ‘좋아함’이 동력이기에 연애와 겹쳐 보이는 게 당연한지도 몰라요.
‘아, 책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면. 그건 일로 접근하는 거죠. 그런데 전 ‘요즘 작가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올해 안부 인사를 못 전했네’ 이런 생각을 해요. 만약 1년 이상 안부 인사를 못 드렸다면 죄송한 마음이 크죠. 그런데, 그런 경우가 지금은 많이 떠오르진 않아요. 하하하.
시인의 섬세한 눈과, 카피라이터의 한 끗
...끊임없이 ‘좋아하세요?’를 물어온 치열한 시간들
신중한 애인처럼 책을 짓는 김성태 편집자는 누구인가. 그는 시인 출신이다. 20대이던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하지만 이 신중한 청년은 고민했다. ‘시를 쓰기 위해 시를 쓰는 것’과 ‘할 말 있어서 쓰는 것’ 사이를 고민하면서. 그런 그는 광고 카피라이터가 됐다. 문득 JR 철도 광고의 카피 문구가 ‘시’처럼 느껴졌다고 했다.(“자신의 방에서 인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4년 가까이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언어를 만졌다.
어떻게 ‘편집자’가 됐을까. “3~4년 차 직장인이라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하잖아요. 많은 곳에 문을 두드렸죠. 그런데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무엇을 곁에 가장 많이 두고 있나, 질문하며 제 방을 둘러보니…. 책이 굉장히 많았던 거죠.” 광고 카피처럼 그는 방에서 다음 인생의 길을 찾았다. 그렇게 김영사에 입사해 7년 차 편집자이자, 베스트셀러 편집자. 그리고 작년 1월부터 인문교양 편집팀장이 됐다.
Q. 시인, 또 카피라이터로 살았던 경험이 지금의 일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풍부해요. 관심사가 정말 많죠. 그리고 바다처럼 깊고 넓어요… (갑자기 웃는다) 좀 부끄러운데, 그래서 기획 일이 힘들지 않아요. 좋아하는 게 많고, 깊게 좋아하죠. 만들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요. 오히려 24시간에 책을 더 만들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다만, 하루 24시간에 3분의 1이 잠이고, 3분의 2가 다 책이 되는 상황은… 좀 슬퍼요. 제 친구나 가족이 사라지는 형태일 수 있으니. 그런 고민이 있어요.
Q. ‘힘과 쉼’의 편집자에게 그 책이 필요한 순간이군요. 궁금한 게 있어요. 김성태 편집자에게 ‘좋아함을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랜 시간 고민하며) 죄송해요.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일이 없어서. 왜냐면, 저는 대체로 손을 내미는, 구애하는 입장이죠. 저자들이 거꾸로 ‘내 손 좀 잡아줘’라고 하는 상황이… 그런 적이 없던 건 아닌데, 생각해보지 않던 주제예요.
전 평소 작가의 생명력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사계절 푸른 소나무가 아닌 이상 이파리는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도 계절이 돌면 나무에는 나이테가 생기고, 기둥이 두꺼워지면서 더 울창한 이파리가 맺혀요. 그리고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 생명력을 고민해요. 비단 저랑 작업을 하시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모든 작가님들이 그런 생명력을 유지하는 글에 대한 치열함, 혹은 감정이 있고, 그 마음이 잘 생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작가님들을 좋아하고요.
Q. 앞으로도 많은 책을 만들 텐데, 그때에도 잊지 않길 바라는 단 하나의 지침 같은 게 있다면요?
‘좋아함’이라고 예상하셨죠? 맞아요. (좌중 웃음) 작년 1월부터 회사에서 팀을 꾸렸는데, 팀장이자 동료로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에요. ‘판매를 위한 것인가요, 좋아하는 건가요?’. 꾸준히 물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답이 찾아져요.
그 좋아함이 제겐 초심 같은 거예요. 전 초심이 첫눈 같아요. 첫눈이 내리기까지의 기다림과 설렘이 있죠. 첫눈 같은 첫만남이 있기까지. 그 기다림과 설렘을 생각한다면, 일을 하며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초심의 형태는 정해진 게 아니에요. 전 책 한 권을 만들 때 ‘내가 왜 이 작가님과 이 책을 만들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거든요. 그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초심이 드러나죠. 그게 없으면 지속하기 힘들어요. 마지막 마감을 하는 마음이기도 하고요. 와, 지금 마감하러 가야 하는데! 소름이 돋네요. (웃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편집자 혹은 인간 김성태의 꿈이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간단한 마지막 질문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면서 좋은 책들을 만들고 좋은 세상을 가꿔가는 것이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 바다처럼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인터뷰 내내 “단 한 권의 책만 예시로 들면 다른 책이 소외된다”면서, 개별 책의 에피소드 언급을 주저했던 그다. 잠시 후 처음으로 책 한 권의 이름을 말했다. 『할머니의 그림 수업』이다.
“우리 시대의 어르신들이 뚜렷한 메시지를 주는 책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어르신들의 이야기예요.” 책은 제주 조천읍 선흘 마을의 여덟 할머니의 이야기. 여성이라서 글을 배우지 못했고, 제주4·3사건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이들이 그림 수업을 매개로 삶을 기록하는 이야기. 수많은 베스트셀러 책을 작업했지만, (아직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이 책이 많이 읽히는 게 그의 바람 중 하나다.
넌지시 할머니들과 지금도 연락하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곧 뵈려고 약속을 잡아놨다”며 웃었다. 성실한 사랑의 편집자, 김성태의 다음 책은 무엇이 될까.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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