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퓨전 재즈의 거장 팻 메시니(71·Pat Metheny·팻 메스니)는 전천후 기타리스트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정제된 사운드의 어쿠스틱을 짚으면 서정에 능한 연주자인가 싶다가도, 일렉 기타를 들고 블루스를 들려줄 땐 이렇게 치열한 뮤지션이 또 없다.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열린 '펫 메시니 드림 박스 / 문다이얼 투어'에선 이 두 세계의 총합을 안은 메시니의 면모는 물론 그를 '기타 사색가(思索家)'로 부를 만한 장면이 수두룩했다.
9년 만에 내한한 메시니는 삶의 기미(幾微)를 기타 현(弦)으로 엿보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그는 기타를 연주하지 않는다. 감각으로 기타를 밀어붙인다.
그렇게 53장의 앨범이 빚어졌다. 무엇보다 비슷한 걸 변주해 내놓은 결과물들이 아니다. 손목 터널 증후군 등 어려움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도전, 혁신한 결과물이다.
특히 감성, 사색만큼 신체의 움직임이 중요한 연주자에게 칠순이 넘은 나이는 결코 적지 않다. 기술의 정확성, 기교의 속도가 예전보다 못해지는 건 순리다. 내한에 앞서 투어가 예정됐던 중국에선 병원에도 다녀왔다는 그는 이날 공연 막판엔 연신 손목을 털었다.
하지만 깁슨, 아이바네즈 등 그의 명기와 42현 기타인 피카소(pikasso) 같은 무기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가운데도 그의 선율과 리듬엔 비문이 없었다. 루프 스테이션(소리를 현장에서 바로 녹음해 반복해서 들려주는 장치)의 과하지 않은 효율적인 사용도 특기할 만했다.
최근 발매한 솔로 앨범 '문 다이얼' '드림박스' 수록곡들의 연주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경지였다. 잘 단련해온 거장 연주자의 숙련도가 무엇인지를 증거했다. 이 정도면 그의 손가락, 팔 아니 온 몸이 악기인 것처럼 보이고 들렸다.
공연 초반엔 재즈 거장 베이스 찰리 헤이든과 협업한 음반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Beyond the Missouri Sky)' 수록곡을 들려줬다. 재즈 팬들이 명반으로 꼽는 앨범 중 하나다. 메시니는 헤이든에 대한 존중심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차분한 음색의 바리톤 기타로 보사노바 상징곡인 '이파네마의 소녀'(Garota de Ipanema)를 연주할 때는 명징하면서 정갈했다. '문 다이얼' 수록곡들도 바리톤 기타로 연주했다.
이날 메시니는 다른 공연보다 확연히 많은 토크량으로 실제 자신의 음악인생 서사도 쌓아갔다. 실력 있는 트럼펫 연주자들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기타를 잡게 된 과정을 풀어냈다. 객석과 문답을 주고 받을 때 최고로 좋아하는 앨범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스티비 원더의 '송스 인 더 키오브 라이프(Songs in the Key of Life)'라고 답하기도 했다.
공연의 또 다른 백미는 앙코르였다. 메시니 무대의 또 다른 상징 중 하나인 오케스트리온(Orchestrion) 공연의 압축판이 펼쳐졌다. 공연 내내 메시니 양 옆에 베일에 쌓여 있던 야트막한 언덕은 무대 연출 오브제가 아니라 또 다른 기타, 베이스였다. 베일이 벗겨지고 무대 뒤편 장치에서 불이 들어오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천재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을 떠올리는 헝클어진 메시니의 머리가 그제야 확연히 들어왔다. 사실 메시니는 '재즈계 아인슈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케스트리온은 미리 입력된 기계적 장치에 따라 자동으로 악기가 연주되는 시스템이다. 무대 위 모든 악기는 자기력을 발생시켜 전기를 기계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솔레노이드에 연결돼 있다. 압력차에 의해 발생한 음들을 재현, 실제 인간이 연주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이를 통해 사람이 연주하기 힘든 영역의 하모니를 정교하게 구현한다. 메시니는 기타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홀로 합주를 하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사실 메시니는 올해 새롭게 개관한 GS아트센터의 해당 공간이 LG아트센터이던 시절이던 2010년 이곳에서 오케스트리온 공연을 펼쳤다. 당시엔 악 3개층 철제 구조물의 각 칸에 드럼, 베이스, 비브라폰, 퍼커션, 베이스 등을 넣어 악기 박물관을 공연장 안에 통째로 가져온 듯했다. 이번엔 심플한 구조였지만, 공연 내내 다양한 기타 서사를 쌓는 빌드업을 통해 강렬한 임팩트를 안겼다.
이날 무대는 이처럼 '솔로 공연의 다채로움이라는 건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명연이었다. 메시니는 생(生) 자체가 연주가 되는 그 자신이 퍼포머다.
메시니는 25일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GS아트센터와 공연 기획사 프라이빗커브가 협업하는 'GS아트센터 X 서울재즈페스티벌'의 하나다. '제17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25' 스핀 오프 격인 실내 공연이다. 지난 20일엔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 베이시스트 크리스천 맥브라이드(Christian McBride), 드러머 마커스 길모어(Marcus Gilmore)로 구성된 트리오가 공연했다. 30일부터 6월1일까지는 야외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서울 재즈 페스티벌(서재페) 2025'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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