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책꽂이 ②] 리호 시집 ‘설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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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책꽂이 ②] 리호 시집 ‘설탕이니까’

뉴스로드 2025-05-14 08:37:40 신고

▲시집 한 줄 평

“환한 곳 여럿일 때 활짝 웃는 척하고, 어두운 곳 혼자일 때 문장 뒤에서 꺽꺽 울고 있다.”

 

▲시 한 편

<이 시는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리호

부채표 후시딘을 목 주위에 발랐다 날도 더운데 까스활명수를 바를 수는 없다 영하 1도에도 기운 펑펑

샘표 조림 간장으로 두부조림을 만들었다 샘솟는 기운으로 월요일

펭귄표 고등어조림은 우체통에 넣어두고 메모장을 남긴다

—내가 느린 게 아니야, 든든한 바다를 빠른 등기로 보내겠어

곰표 밀가루로 눈사람의 손에 장갑을 그리고

수요일은 심심해 곰 같은 애인이라도 불러야지

오뚜기표 튀김가루에 순후추를 뿌리고 핫도그를 만들 때 일곱 번째 시험을 치르고 온 녀석의 입

백설표 올리고당을 넣어 맛탕을 할 때는 최대한 나풀거리는 앞치마 공주라고 한 번만 불러 줘 전우!

해표 식용유를 물처럼 꿀꺽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청정원표 구운 소금을 뿌려 미역국을 끓인다 국회로 납품할까

남양 요구르트를 얼리고 굿모닝, 광동표 쌍화탕을 데우고 굿나잇

▲시평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고, 그 말조차 문장 뒤에 숨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는 상품을 직접 노출하지 않는 간접광고와 많이 닮았다. ‘이 시는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제목 뒤에 어떤 사실이 감춰져 있을까. 시인은 부채표 까스활명수, 후시딘, 샘표 조림간장, 곰표 밀가루, 오뚜기 튀김가루, 백설표 올리고당, 해표 식용유, 청정원표 구운 소금, 남양 요구르트, 광동표 쌍화탕 같은 상품명을 직접적으로 노출한다. 외상에 바르는 후시딘과 소화제 까스활명수, 몸살감기에 먹는 쌍화탕을 빼면 다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특히 튀김 요리를 하는 재료들이다. 한데 첫 행에서 부채표 까스활명수를 “부채표 후시딘”이라 슬쩍 도치한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프다는 뜻이다. 튀김 요리와 더불어 “미역국을 끓인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말이다. 한데 왜 미역국을 “국회로 납품할까”. “일곱 번째 시험을 치르고 온 녀석”은 시인을 “앞치마 공주”라고 부른다. “한 번만 불러 줘 전우!”라는 말에 답이 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앞치마 공주”라는 말. 국회에 하소연하고 싶은 억울함. 몸과 마음이 아파도 기운을 내서 “녀석”의 생일상을 차리고는 몸져눕는다. 녀석이 좋아하는 “남양 요구르트”를 냉동실에 얼리며 시작한 하루, “광동표 쌍화탕”을 마시며 닫는다. 직접 말하지 못하는 마음 뒤에 짙은 슬픔이 감춰져 있다. (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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