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커버린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가이드

우리는 너무 많은 말 속에 살아간다. 쏟아지는 정보와 텍스트들로 정신없는 날에는 긴 문장을 읽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럴 때 그림책 주변을 기웃거리게 된다. 단순한 문장과 여백, 다채로운 색을 머금은 그림이 조용한 위로가 되어준다. 2025년, ‘그림책의 해’를 맞아 출판계는 어른의 그림책 읽기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어떤 그림책부터 읽어야 할까? 어떻게 읽어야 ‘느낄’ 수 있을까? 지금 소개하는 일곱 권의 책은, 그런 질문 앞에 놓인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입문서, 그림책에 대한 책이다.

짧은 그림책에서 삶의 방향을 찾다

『힘이 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김민영, 김예원, 허유진, 오숙희, 오수민, 우신혜, 김미연, 이인자, 이혜령, 박은미 지음 | 섬드레 펴냄 | 180쪽 | 16,800원

학습공동체 숭례문학당의 독서모임 전문가 10인이 각자의 ‘인생 그림책’ 한 권씩을 골라 에세이로 풀어냈다. 오랜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삶을 나누어온 저자들이 저마다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빛과 단어, 상상과 시를 모아 ‘쓸모’를 의심받는 프레데릭이 결국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그림책 『프레드릭』을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준비하는 선택의 용기를 배우듯, ‘선택하는 힘’, ‘깨고 나오는 힘’, ‘질문하는 힘’처럼 인생의 전환점마다 저자들에게 힘이 되어준 그림책들이 속속 등장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이 투영된 진짜 기록이라는 점이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책은 때로 길을 잃은 어른에게 필요한 건 긴 말보다 단순하고 다정한 그림책 한 권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작고 소박한 텍스트에서 건져 올린 삶의 통찰이, 독자에게는 자신만의 인생 그림책을 찾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림책이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마음 우체국에

『그림책이 있는 마음 우체국』
꿈길희망등대 그림책 모임 지음 | 벗나래 펴냄 | 240쪽 | 17,000원

꿈길희망등대라는 이름 아래 모인 12명의 저자들이 삶의 어느 시점에서 만난 그림책을 통해 마음을 돌보고, 쓰고, 나눈 기록. 책 속에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슬픔과 후회, 말하지 못한 기억들이 그림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조심스럽게 꺼내진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도 슬퍼할 틈 없이 성장기를 통과한 한 저자가 오랜 시간 삼킨 울음은 그림책 앞에서 마침내 흘러내린다.

“남의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이제는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다”라는 저자들의 진솔한 고백 덕분에 독자는 자신의 감정을 직면할 용기를 얻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삶의 균열, 그리고 그림책으로 그 틈을 가만히 메워가는 치유의 편지가 담겨 있다.

그림책방지기 엄마 이야기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
이혜미 지음 | 톰캣 펴냄 | 304쪽 | 18,000원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이를 두고 출근하던 날, 저자는 결심했다. “퇴사하고 그림책방을 차려야겠다.” 그림책방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림책은 글이 적고 그림이 많은 ‘어린이용 책’이니, 다 읽고 책방에 들여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마침 아이도 그림책을 읽기 좋은 나이가 됐다. ‘하지만 웬걸, 무심코 읽은 그림책 한 장에 오열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책은 단지 서점 운영기를 넘어, 그림책으로 삶을 운영하는 기록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책방에서, 저자는 매일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한다. 책 속에도 ‘새로운 시도가 두려운’,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힌’, ‘꿈을 찾아가는’ 당신을 위한 그림책 추천 등 정성스러운 그림책 큐레이션이 마련되어 있다. 삶에 지친 어른들이 자신처럼 그림책을 통해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새로운 꿈을 꾸는 그림책방지기의 기록.

운명처럼 다가온 그림책

『하루 한 권 그림책의 기적』
정주애 지음 | 이루리북스 펴냄 | 226쪽 | 16,800원

암투병과 독박육아, 출산과 복직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어느 엄마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 도서관에서 우연히 꺼낸 한 권의 그림책이 인생의 균형추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 30분, 아이와 함께 책장을 넘기며 시작된 독서 루틴은 어느새 작가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시간으로 변모했다. “오늘도 한 권 읽어볼까?”라는 아주 사소한 결심이 얼마나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실천의 언어로 쓰인, 따뜻하고 유용한 그림책 사용 설명서이자, ‘나를 돌보는 법’을 잊은 모든 어른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회복의 기록.

책은 그림책을 일상 속으로 들이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안한다. 반복해서 읽기, 소리 내어 읽기, 집에 그림책 전시하기, 잠자리 독서 루틴 만들기… 작가가 직접 실천하고 검증한 노하우들이 그림책을 몰랐던 이들에겐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나의 감정과 기분을 잘 모르겠다면

『우는 법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김영아 지음 | 쌤앤파커스 펴냄 | 264쪽 | 16,000원

눈물이 나야 하는데, 울지 못했던 적이 있나. 『우는 법을 잃어버린 당신에게』는 그 감정의 공백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책이다. 심리학자이자 그림책 독서치유 전문가인 저자가 프로이트, 아들러, 융 등 심리학의 주요 이론을 토대로, 그림책 속 장면들과 마음의 구조를 연결해 낸다. 심리학 이론이 부담스럽다면, 그림책 속 인물에 마음을 이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왔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책은 상담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와 함께, 심리학 이론이 실제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에는 지금 어떤 ‘미해결’ 과제가 있냐고. 치유 이전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의 발견부터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림책 속 한 문장의 위로

『마음에 스미는 그림책 한 문장』
그림책사랑교사모임 지음 | 케렌시아 펴냄 | 244쪽 | 18,000원

오랫동안 교실에서 그림책과 함께 살아온 교사들이 모여, 가슴에 깊이 새겨졌던 그림책 속 문장 100개를 추려 소개한다. 그 문장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림책 속 단순하고 짧은 문장이지만, 천천히 음미하고 관련된 경험과 감정을 떠올리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가라앉고 생각이 정돈된다.

필사 노트이자 감정 일기장, 글쓰기 연습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책 속 하나의 문장을 실마리 삼아 한 편의 에세이를 뚝딱 써내려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림책사랑교사모임이 추천하는 것처럼, 필사 전후로 꼭 그림책을 찾아 읽어보시라. 풍성한 그림책 독서 경험이 꾸려질 것이다.

그림책 처방해 드립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펴냄 | 324쪽 | 16,000원

20년 차 에디터였던 저자는, 마감과 일상에 쫓기던 어느 날 그림책 앞에 멈춰 섰다. 단순한 이미지와 짧은 문장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오랫동안 품고 있던 감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저자는 ‘그림책 처방’을 시작했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를 자존감 낮은 청춘에게, 『커다란 질문』을 존재의 이유를 묻는 이에게, 『숲으로 간 코끼리』를 번아웃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저자는 각 사연을 읽고, 거기에 맞는 그림책을 고르고, 조용히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림책이라고 언제나 밝고 명랑하기만 한 건 아니다. 책은 어두운 감정, 슬픔, 외로움, 비교, 자기혐오 같은 감정들까지도 그림책의 언어로 풀어낸다. 삶에 관여하고, 질문하고, 붙드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그림책을 읽는 이유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쯤 있냐고.

짧은 글이 때로는 긴 이야기를 대신한다. 여기 소개된 책들 속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하는 그림책이 있다면, 주저 말고 펼쳐보자. ‘그림책은 언제나 그 크고 넉넉한 품으로’ 당신을 환영할 테니.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